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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마태복음

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 : 마태복음 14-15장(2)

by 예다준 2022. 8. 11.

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 : 마태복음 14-15장(2)

 

 

2. 마태복음 14-15장 전체 구조

  이상의 분석 사항들을 종합하면 마태복음 14-15장의 구조는 이렇게 분석이 가능하다. 먼저는 주제의 연관성과 기록된 순서를 그대로 살려 변형된 교차대조법으로 보는 방식이다.

A. 오병이어
  B. 물 위를 걸어오심 - 믿음 강조
      C. 대중 치유
        X. 논쟁과 비유
    B'. 가나안 여인 딸 치유 - 믿음 강조
      C'. 대중 치유
A'. 칠병이어

  이 모양은 X를 문학적 구조의 중심으로 하는 교차대조법에 외곽에는 동의적 평행법의 레이아웃들을 가진 구조이다. 달리 말하면 동의적 평행법과 교차대조법과 결합한 형태이다. 변형된 구조는 아래 도표와 같이 마태가 동의적 평행법의 칠병이어(A')를 맨 뒤에 배치한 것을 말한다. 

A. 오병이어
  B. 물 위를 걸어오심 - 믿음 강조
      C. 대중 치유
        X. 논쟁과 비유
A'. 칠병이어
   B'. 가나안 여인 딸 치유 - 믿음 강조
      C'. 대중 치유
A'. 칠병이어

  그렇다면 마태는 단체 급식 기적을 마치  inclusio와 같이 사용하여 마태복음 14-15장을 하나로 묶었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마태가 단체 급식 기사로 문단의 앞과 뒤를 묶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에 상당히 설득력 있는 해석으로 보인다. 


  일단 두 급식 기사에 대한 현재의 위치가 단락의 처음과 마지막에 있고, 기사의 내용이 단체 급식 기사로 같다. 
  여기에 더 중요한 것으로 앞에서 간략하게 언급된 급식 기사에서 아주 중요한 설명으로 작동하는 (무리들을) "불쌍히 여긴다"는 표현의 기능이다. 이 표현은 오병이어 급식 기사 앞에 그리고 칠병이어 급식 기사 앞에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14:14에는 주님의 무리를 불쌍히 여기심이 대중 치유의 동인이 되고 동시에 무리 급식의 원인이 된다. 이와 같이 15:32을 보면, 주님께서 대중 치유를 하신 후에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말씀하시고 무리가 길에서 기진할까 염려해서 칠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두 대중 급식 기사가 모두 무리를 불쌍히 여기는 주님의 마음과 직결되었다는 점이다. 


  이 견해는 교차대조법의 중심인 X와 비교하면 의미심장한 문맥을 보여준다. X의 주제는 사람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거짓 인도자 바리새인의 외식에 대한 비판이다. 이때 주님께서 예를 든 것이 부모 공경에 대한 문제였다(15:4-6). 그들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려고 자신들이 만든 유전으로 하나님의 법을 유린했다고 주님은 지적하셨다. 여기에서 A와 A'를 X와 비교하면 바리새인의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마음과 대중 급식 기적으로 무리를 불쌍히 여기는 예수님의 마음이 대조된다. 

 

  학자들은 마태복음의 오병이어 기사가 다른 공관복음서인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나오는 오병이어 기사와 다른 점을 들 때 마태복음의 오병이어 기적은 주님께서 세례 요한과 같이 선지자로서의 죽음을 염두하고 행해진 것에 중점이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마태복음의 오병이어 기적은 십자가 죽음이 그의 백성들에게 가져다줄 은혜를 급식으로 예고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은 사람 사랑을 외면하려고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거짓 인도자요 외식자였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천국을 가르치고 치료하고 하늘 음식을 먹이는 분으로 대조하는 것이 마태복음 14-15장의 중요 역할이라 보게 된다.  

  마태복음 14-15의 문학적 구조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은 B와 C 그리고 B'와 C'를 믿음과 치유라은 주제로 묶어서 미시적인 구조로 표현하는 아래와 같은 방법도 가능하다 본다.

A. 오병이어
  B. 예수에 대한 믿음과 치유
    b1. 물 위를 걸어오심 - 믿음 강조
      b2. 대중 치유
        X. 논쟁과 비유
    B'. 예수에 대한 믿음과 치유
      b1'. 가나안 여인 딸 치유 - 믿음 강조
        b2'. 대중 치유
A'. 칠병이어

  무엇을 선택할지는 성경 본문들 사이의 미세한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 생각한다. 

 

3. 문학적 구조 분석으로 발견할 수 있는 함의

  마태복음의 저자인 마태가 성경을 어떤 의도와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 기록했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성경을 연구하면 마태복음의 각 장을 주도하는 신학적 주제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주로 전문적인 신학자들의 연구에서 다루어지는 것들이라 일반 성도들에게 전달되기 어렵고 또 내용도 들어보면 어려워 이해가 잘 되지 않고, 성도들이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해도 발견하기 아주 어렵다. 그래서 한 단어 한 구절, 그리고 내용 중심의 성경 해석을 넘어 성경 저자의 문체와 구조 위주의 성경 해석을 권장해야만 한다. 

 


  3-1.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겨 먹이고 치료하는 "목자-메시야" 예수

  마태복음 14-15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먹이고 치료하는 '목자-메시야 예수" 이미지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치유는 물론 그분이 행하신 모든 하늘의 기적들(특히 마태복음 14-15장에서는 대중 급식 기적)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마 9:6을 보면 주님께서 자신의 치유 사역을 죄를 사하는 사역과 연결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는 예수의 속죄 사역의 결과로 치유가 행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마태복음 14-15장에는 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예수님의 치유와 기적의 원인을 설명해준다. 그것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마 14:14, 15:32).

  마 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마 15: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불쌍히 여겨 치유하고 먹이는 예수님의 모습을 "목자-메시야"라고 학자들은 부른다.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 이전에 일어난 동방박사 사건에서 아기 예수님을 "목자-왕(다스리는 자)"으로 선포하고 예수 이야기를 시작했다(2:6). 이때 마태가 예수님을 "목자-왕(다스리는 자)"으로 증명하기 위해 사용한 구약성경이 미가 5:2이다. 이를 기억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완성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할 때 마태가 사용한 구약 성경이 구약의 목자-메시야 전승을 배경으로 하는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들(슥 11:11, 13:7)임을 연결해보면 마태복음은 전체가 목자-메시야 주제로 inclusio를 이룬다 판단할 수 있다. 마태는 복음서의 서두인 예수님의 탄생 기사를 목자-메시야 주제로 시작해서 종결인 예수님의 수난 기사도 목자-메시야 주제로 마감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이 전하는 예수의 삶 전체는 목자-메시야의 삶이라 단언할 수 있다. 


  마태복음 14-15장은 마태복음에서 목자-메시야의 실재적인 모습이 가장 선명하게 기록된 부분으로 보인다. 목자가 양들을 불쌍히 여겨 먹이고 상처를 치료하고 구해주는 것과 같이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은 그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먹이고 치료해주셨다. 이를 상징하는 사건이 두 번의 대중 급식과 두 번의 대중 치유 기사로 마태는 이것들을 평행법의 대조되는 자리에 배치해서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강조해 놓았다. 
  그리고 종국적으로 "목자-메시야"는 빵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그의 백성들에게 내어줌으로 궁극적 치유와 배부름을 주신다. 이것이 두 대중 급식 기사를 마태가  연결한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이다. 

  "목자-다스리는 자(메시야, 왕)" 기독론은 예수님의 메시야로서 다스림이 그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김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는 반대로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목자-다스리는 자(메시야, 왕)" 와 다른 자는 모두가 이스라엘의 참 지도자가 아니라 거짓 지도자요 사악한 목자로 하나님의 메시야를 대적하여 하나님에게서 내려오는 하늘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메세지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사람의 유전을 만들어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게 만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에 대한 비판 기사를 전체 구조의 중심에 배치한 마태의 문학적 전략이다. 

  이 말씀은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한다는 개인적인 소감을 숨길 수 없다. 목회자로서 지난 나의 삶을 돌이켜보니 예수님과 관계없는 삶에 대한 회한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 솔직한 자기 고백이다. 

 


  2-2.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근본적인 문제 : 마음의 더러움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 그들 중 특히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 같은 자들이 악한 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다 생각하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 이제 우리는 마태복음 14-15장을 통해서 그들의 악함의 근본을 확인하고 우리 자신을 엄히 비판할 수 있다. 
  마태복음 14-15장에 나타나는 바리새인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마음이다. 이는 해당 단락을 분석해보면 알 수 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비판하는 15:1-20은 두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먼저는 그들의 "외식"을 강조하는 1-9절이고, 다음은 그들의 "마음의 더러움"을 지적하는 10-20절이다. 먼저 2-9절은 아래와 같이 "외식"이 중심 주제인 교차대조법이다.

  a.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외식적인 질문(2절)
    x. 외식을 증명하는 실재 사건과 예수님의 비판(3-6절)
  a'. 구약 성경을 근거로한 외식의 확증(7-9절)

  그리고 10-20절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정체를 소경 된 인도자로 정의하고, 이들이 소경 된 인도자가 된 이유를 마음의 더러움으로 설명하는 교차대조법이다.  

  a. 마음의 중요성에 대한 비유 : 입에 들어가는 것과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10-11절)
    x. 소경과 소경을 따르는 자의 비참한 결말(12-14절) 
  a'. 비유에 대한 설명 : 더러운 마음이 문제이다(15-20절)

  예수님의 비판을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서 나타나는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들은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했고(15:3-4), 이는 구체적으로 십계명인 부모 공경 계명을 폐했다(15:5-6). 그래서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게 만들었다(15:7-9).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심은 것이 아니기에 (잡초처럼) 뽑힐 것이고(15:13),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 둘 다 구덩이에 빠지는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15:14).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문제가 만드는 결말은 한 마디로 "공멸"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공멸의 원인이 되는 바리새인의 외식이 마음의 더러움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주님께서는 이들의 외식에 대해 단 하나 "마음의 더러움"에만 집중포화를 가하셨다. 우리는 이와 같은 예수님의 지적을 보면서 5:8을 생각하게 된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문제는 마음이 더러워서(청결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의 실재 정체는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소경이다. 주님께서는 이 더러운 마음에서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것들이 나온다 설명해주셨다(15:17-20).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누리는 모든 것이 더러운 마음에서 나오는 더러운 것들이 만든 허상이다. 이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뽑힐 것이다.


  이 주제는 우리를 괴롭게 한다. 칼날이 후비는 것과 같은 마음의 고통을 준다. 참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자라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자 누구며, 이 고통이 무가지하다 할 자가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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