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마태복음

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 : 마태복음 18장(2)

by 예다준 2022. 8. 16.

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 : 마태복음 18장(2)

 

 

2. 마태복음 18장의 전체 구조와 해설

  위 그림을 교차대조법을 표시하는 일반적인 모형을 따라 정리하면 이렇다.

A. 천국 입성의 조건
  - 어린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1-4)
  B. 형제의 실족을 방지하기 위한 가르침
     - 형제를 실족케 하는 자가 당할 화(5-10)
    X. 길 잃은 소자를 찾는 것이 하나님의 뜻(기쁨)이다(12-14) 
  B'. 형제의 실족을 방지하기 위한 가르침
     - 두 세사람이 권면하고, 징계하고, 기도하라(15-20)
A'. 천국 입성 실패의 조건
  -형제를 용서하지 않음(21-35)

  마태복음 18장의 구조는 전형적인 교차대조법이다. 가운데 X가 중심 메시지이고 다른 레이아웃들은 X를 보충 설명하는 일을 한다. 이제 각 레이아웃들이 나타내는 메세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것이 문학적 구조를 찾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이 메세지는 개별 단락을 넘어 평행법의 짝이 어울려 나타는 구조적 메세지이고, 병렬적 사고와 병렬적 구조로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의 저작 의도이다. 현대인의 직선적인 논리는 이것을 알아보기 쉽지 않기 때문에 이 메세지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각 레이아웃을 통해 마태가 우리에게 말하려는 구조적 메시지를 본다. 

 


  2-1. A 레이아웃(A와 A')

  A와 A'는 동일하게 "~와 같이" 천국에 합당한 자의 자격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했다. 이를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두 단락이 연합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에 강력한 긴장감을 주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A의 어린 아이 같은 자는 성인 중심의 유대 사회에서는 불완전하게 취급을 받는 약자였다. 그래서 제자들도 어린아이가 주님께 다가가는 것을 막고 접근하지 못하도록 무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어린아이 같은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이고 더 나아가 천국에서 큰 자라 정의하니 제자들은 무척이나 놀라고 당황했을 것이다. 


  A'에서 제기된 천국에 합당한 자는 부정적으로 천국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묘사되었다. 누가 천국에 합당하지 않은 자인가? 그는 천국의 용서를 받았다가 취소된 사람이다. 이 사람이 제자들을 놀라게 만드는 것은 주인의 마음(불쌍히 여겨 용서해주는 마음)을 무시했기 때문에 주인으로부터 받은 용서를 박탈당했다는 사실이다. 20장을 보면 제자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주님의 나라에서 예수님의 오른편과 왼편 이른바 넘버 2의 자리에 앉기를 원하는 높은 자 경쟁이다. 이 경쟁을 보면 제자들에게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보인다. 그런데 천국의 용서가 주인의 마음을 무시함으로 취소될 수 있다는 사실은 천국 입성에 자신감을 가졌던 마음들을 일시에 허무는 폭탄과 같이 작용했을 것이다. 


  마태는 마태복음 18장의 처음(A)과 마지막(A')을 동일하게 천국에 합당한 자의 자격에 대해 말했다. 그런데 그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의 자격에 대한 정보를 주기 보다는 천국 입성자의 자격이 생각지도 않는 측면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알려주려 했다 판단된다. 그래서 "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인가?"를 확인하도록 유도하려는 마태의 의도로 보인다. 


  그러면 무엇으로 내가 천국 입성에 합당한 자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가? 그것은 천국의 주인인 하나님을 대하는 "~와 같이"태도이다. A 레이아웃의 두 주인공은 하나님에 대한 태도에서 성공과 실패의 예가 된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보였던 어린아이 같은 자는 하나님께 자기를 낮추므로 천국 입성에 합당한 자가 되었고,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은 하나님의 마음에 반해서 자기를 주장함으로 천국 입성이 취소되었다.


  본문에 대한 관찰이 여기에 까지 이르면 자연스럽게 A 레이아웃이 교차대조법의 중앙인 X와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 레이아웃은 X를 위한 서론이고 X는 A 레이아웃의 결론이다. A 레이아웃은 질문이고 X는 답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요 기쁨이기 때문이다. 

 


  2-2. B 레이아웃(B와 B')

  문학적 구조가 말하는 메세지로 볼 때 A 레이아웃은 "누가 천국에 합당한 자인가?"라는 질문에 집중하도록 자극을 주는 역할을 하고 X는 질문에 대해 잃어버린 한 영혼을 구하는 것이라 답해준다. 이제 B 레이아웃은 잃어버린 한 영혼을 구하는 일에 대해 보다 상세한 가르침을 주는 기능을 담당한다. 

  B는 형제를 실족하는 일의 위험성을 극단적인 결과와 극단적인 대응책으로 표현해서 A 레이아웃보다 긴장감이 더 크다. B의 가르침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형제를 실족케 하면 지옥의 불 심판을 받는다. 그러니 형제를 실족케 하는 원인은 자기 지체라도 잘라버리는 극단적인 조치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18:7-9). 

  B'는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형제를 구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해준다. B는 개인적인 행동에 해결책이 집중되어 있고 B'에는 공동체적 행동에 해결책이 집중되어 있다. 이것으로 예수의 제자들은 공동체를 이루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2-3. X

  교차대조법의 중심은 하나님의 뜻과 기쁨에 대한 선언이다. 하나님의 기쁨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구출하는 것이다. 이 선언은 A 레이아웃의 주인공이 무엇 때문에 천국에 합당한 자가 되고 그 반대로 천국에 합당한 자의 자격을 박탈당했는지를 말해주는 대답이고, 마태복음 18장 모든 기사를 이해하는 기본 원칙이 된다. 소자를 실족케 한 것이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은 하나님의 기쁨과 뜻을 실족케 했기 때문이다. 범죄 하여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되어버릴 자를 교회가 기도하고 권면하여 회복시키려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이 모든 제자들의 수고의 이유는 단 하나로 간단명료하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의 기쁨이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과 기쁨이 제자-제자 제자도의 근본적인 정신이고 동시에 구원과 관련되는 이유이다. 하나님의 마음과 기쁨이 이와 같은데 이를 무시하고 형제를 실족케 하고 위기에 빠진 형제를 가만히 두어 이방인과 같이 살게하는 것은 천국의 용서를 받았지만 용서할 줄 모르는 종과 똑같은 모습이다. 
  주님께서는 사람은 서로의 관계를 통해서 한 영혼을 얼마든지 실족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셨다(18:7). 하지만 이 일은 제자에게서는 일어날 수 없는 것이라 예수님께서는 단정을 내리고 그에 대한 지옥의 심판을 엄해 명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뜻과 기쁨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주님의 타협할 수 없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는 제자란 있을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한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을 아는 제자들은 한 영혼을 상실하는 것에 무관심하지 않고 그를 살리기 위한 삶을 살아간다. 
  만일 제자가 한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을 무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1-4절의 제자들과 같이 어린 아이가 주님께 나아오는 것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또 5-10절의 반대로 어린아이같이 작은 자를 영접하지 않고 무시해서 실족케 할 수도 있고, 15-20절 말씀과 반대로 죄를 범한 형제의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정죄하거나 그를 위해 기도하지 않음으로 잃어버릴 수 있다. 이 모든 일들은 한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과 기쁨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로 결국 제자들은 모두가 위태롭게 될 것이다. 무시당하고 소외되고 상처받고 죄를 범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3. 마태복음 18장의 함의

  마태복음 18장을 저자가 사용한 문체와 구조를 살펴보아 기존의 현대적 분석 방법으로는 발견하기 어려운 몇 가지 사항을 주목할 수 있게 되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제자-제자 제자도"이다. 

 


  3-1. "예수-제자 제자도"와 "제자-제자 제자도"

  두 용어는 마태복음 18장이 말하는 제자도를 구분하기 위해서 만든 용어이다. 마태복음에서 제자도의 개념은 4장에서 시작되어 8장에서 제자를 부르는 예수님의 명령 "너는 나를 좇으라" 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난다(8:22). 주님께서 이 개념을 예수를 "좇다"(따르다)라는 동사로 나타낸 것과 같이 제자도는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의 삶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마태복음 8-9장을 보면 제자도는 예수를 통해 도래한 천국의 현재적인 두 가지 양상 중 하나이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천국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 천국이 이 세상에서 활동하여 나타난 두 양상이 있다. 먼저는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게 해주는 하늘의 가르침과 기적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세상의 삶을 버리고 예수가 보여주는 새 시대를 따르는 삶, 곧 제자도이다. 이 두 가지 양상은 예수님 당시에서 지금까지 예수의 천국이 선포되는 곳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필수 사건이다. 


  그런데 이 제자도는 18장에 와서 두 가지 양상으로 실천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예수를 따르는 삶이 첫째고, 그다음에는 제자들 사이 관계를 통해서 예수의 메시야적 가르침을  따르는 삶이다. 여기에서는 앞의 것을 "예수-제자 제자도"라 부르고 뒤의 것을 "제자-제자 제자도"라고 불러 구분했다. 이 구분이 중요한 것은 "예수-제자 제자도"와 같이 "제자-제자 제자도"도 그 결과가 종말론적인 심판에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예수를 따르지 않으면 목숨을 잃는 것처럼(마 16:24-27) 제자들 사이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살지 않으면 종말론적인 심판에서 화를 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예수-제자 제자도가 주된 제자도이고 제자-제자 제자도는 부차적인 윤리로 보아서는 안된다.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제자도라하면 앞의 것을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 교회는 제자 훈련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제자도는 한국 교회에 아주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예수-제자 제자도"만 잘하면 천국에 가고 믿음도 좋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묻혀진 것이 "제자-제자 제자도"이다. 만약에 주님께서 마태복음 18장의 제자도를 구원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말씀하셨다면 제자도를 나눌 필요가 전혀 없다. 하지만 주님의 가르침이 그러니 제자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문젯거리가 되는 것이다. 

 


  3-2. 제자-제자 제자도의 구원론적 가치

  마태복음 18장은 "제자-제자 제자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성경으로 가치가 크다. 우리는 예수만 잘 믿으면 구원받는다 믿는다. 달리 말해서 예수와의 관계가 좋으면 구원받는다 믿는다. 하지만 마태는 제자 사이에서 예수님의 메시야적 가르침을 따르는 것도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이 된다고 가르쳤다. 


  마태복음 18장은 이를 옹호하는 말씀들로 모아졌다. 소자 중 하나라도 실족케 하면 지옥불에 던져진다(5-10절). 잃어버린 자 하나를 찾아 구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이고 뜻이다(12-14절). 형제가 범죄하여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되기 전에 교회가 권면하고 기도해서 그를 얻도록 노력하라(15-20절).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형제를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천국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다(21-35절). 이 가르침들을 받은 제자들은 제자들 사이의 관계가 천국과 연관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에 놀랐을 것이다. 실제로 주님 말씀대로 별 볼 것 없는 소자 중 하나라도 실족케 하면 지옥 불의 고통에 빠지기 때문이다.  

  제자-제자 제자도에 대한 강조는 19-20장으로 확대된다. 여기에도 형제를 실족케 하지 않음 또는 형제를 구원함이 구원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나온다. 결혼과 이혼에 대한 가르침(19:3-12), 예수님께 다가온 어린 아이들을 꾸짖은 이야기(19:13-15),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 이야기(20:20-28) 등이 예이다. 예수님의 제자도에 대한 가르침의 강조점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다가가자 바뀌었다는 사실은 주의해볼 만하다. 16장부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다. 이때까지 제자도에 대한 주님의 강조점은 예수를 올바로 따르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예루살렘 여행이 끝나는 18장에 와서 제자도의 또 다른 측면인 제자-제자도로 예수님의 강조가 바뀌어 18-20장의 주된 메세지가 되었다. 마치 십자가를 지기 전에 반드시 제자들에게 주어야 할 가르침이라 생각한 것 같이 말이다. 

 


  3-3. 제자-제자 제자도의 본질 : ~와 같이(ως)

  마태가 마태복음 18장을 통해서 강조하는 제자-제자 제자도의 본질은 하나님의 마음(하나님의 뜻과 기쁨)과 같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교차대조법의 최외곽 레이아웃인 A와 중심인 X를 연결해보면 알 수 있다.

A. 천국입성자격 : 어린아이와 같이
    X. 하나님의 뜻과 기쁨(과 같이)
A'. 천국입성자격 : 천국의 주인과 같이

  교차대조법의 최외곽인 A 레이아웃은 천국에 합당 한자에 대한 자격을 두 개의 "~와 같이"(ως)로 정의했다. 먼저 천국에 들어가려 하는 자는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A). 그리고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 자신을 낮추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천국의 주인과 같이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겨 용서하는 것으로 실천되어야 한다(A'). 천국의 주인과 같이 불쌍히 여겨 용서하는 삶의 구체적인 방법이 B 레이아웃의 두 방법이다.


  여기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해본다. 이것들이 왜 구원과 직결된 제자도가 되어야하는가이다. 그 답이 교차대조법의 중심이다. 이것들 모두가 하나님의 뜻과 기쁨을 이루는 일, 하나님의 뜻과 기쁨과 같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 산상수훈, 메시야적 율법의 핵심 주제임을 기억하면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 예수를 따르는 제자도의 기초가 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주님께서는 7장에서 산상수훈의 메시야적 율법을 선포하신 후 마무리 짓는 구절인 21절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제자도라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은 예수의 메시야적 율법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결론임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주님께서는 5장에서 산상수훈의 메시야적 율법을 선포하신 후 중간 요약하는 구절인 48절에서 하나님처럼 되는 것으로 강조하셨다.

  마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즉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과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해지는 삶은 같은 것이다. 예수의 메시야적 율법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해지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의 전체 맥락이다. 바로 여기에서 예수님의 천국 율법과 제자도가 만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