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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마태복음

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 : 마태복음 24-25장(1)

by 예다준 2022. 8. 31.

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 : 마태복음 24-25장(1)

 

 

 

  인터넷에서 종말론이나 종말론에 관련된 성경을 검색하면 이내 마음이 무거워진다. 마치 온갖 오물들이 뒤섞인 진흙탕 같이 이단과 삼단 사이를 오가는 잘못된 해석들과 비논리적이고 지나치게 상징적인 해석들이 뒤범벅되어 있기 때문이다. 염려되는 것은 점점 괘변 같은 종말론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는 점이다. 그중 마태복음 24-25장은 검색 상단에 신천지나 이단 가까이 있는 자들의 글이 많이 보이는 성경이다. 
  이와 반면에 성경적인 종말론에 대한 글들은 마치 교과서를 보는 것처럼 유명 학자들의 주석이나 교리집을 베낀 것 같아 답답하다. 사실 종말론이 나오는 성경은 해석이 어려워 감히 손대기 꺼려지고 자연스럽게 전문가의 책이나 교리책을 베끼게 된다. 또 해석에 논쟁이 너무 많아 관련된 주장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는 일은 엄청난 노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칫 교리와 다른 해석을 하는 실수(?)를 하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그래서 일반 목회자들과 사역자들은 나도 모르게 기피하게 되는 성경이 종말론이 있는 성경이다. 그런데 드디어 마태복음의 종말론의 절정인 24-25장 순서가 되었다. 

  마태복음 24-25장은 성전 파괴와 예수님의 재림(파루시아, παρουσια)에 대한 교훈이 담긴 강화로 "종말 강화", "감람산 강화" "감람산 종말 강화"등으로 불리는 부분으로 마태복음에서 가장 난해하고 논쟁도 가장 많은 성경이다. 그렇지만 종말을 다루기 때문에 오늘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도 직결되는 말씀이기에 어렵고 위험하다고 지나칠 수도 없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1. 마태복음 24-25장의 문체와 구조의 특색

  마태복음 24-25장을 구성하는 이야기들을 오늘 우리들이 이해하기 쉬운 순차적 방식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1. 성전 파괴에 대한 예수의 예언(24:1-1)
2. 제자들의 질문과 산통의 시작에 대한 말씀(24:3-14)
3. 가장 큰 환란의 때에 대한 말씀(24:15-28)
4. 인자의 징조와 교훈(24:29-35)
  + 무화과 나무 비유(24:32-33)
5. 인자의 오심(파루시아)(24:36-25-13)
  + 노아의 때(24:37-39)
  + 도둑 비유(24:42-44)
  + 지혜있는 종과 미련한 종 비유(24:45-51)
  + 열처녀 비유(25:1-13)
6. 달란트 비유(25:14-30) - 마지막 때를 위한 준비
7. 양과 염소 비유(25:31-46) - 마지막 심판의 기준

  열거된 목록은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들을 단순히 순서대로 정리한 것이 아니라 해석이 가미된 목록이다. +로 표시된 것들은 상부 단락에 속한 하부 단락으로 본다는 의미로 사람마다 얼마든지 달리 볼 수 있다. 
  성경을 살펴보면 특정 단락이 어떤 단락에 속해서 전체 문맥의 흐름을 도와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럴 때 우리는 그 단락을 상위 단락에 속한 하위 단락으로 구분한다. 위 목록에서 "인자의 오심(파루시아)"(24:36-25-13) 단락 안에 노아의 때(24:37-39), 도둑 비유(24:42-44), 지혜 있는 종과 미련한 종 비유(24:45-51), 열 처녀 비유(25:1-13)가 속한 것이라 분석한 것이 예다. 
  이런 방식으로 성경을 분석하면 하부 단락들을 품고 있는 상부 단락들이 정해진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4-25장 전체를 아래와 같이 4개의 상부 단락으로 분석하는 방식이다.

1.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심판
성전 파괴에 대한 예수의 예언(24:1-1)
제자들의 질문과 산통의 시작에 대한 말씀(24:3-14)
가장 큰 환란의 때에 대한 말씀(24:15-28)
인자의 징조와 교훈(24:29-35)
  + 무화과 나무 비유(24:32-33)

2. 인자의 파루시아
인자의 오심(파루시아)(24:36-25-13)
  + 노아의 때(24:37-39)
  + 도둑 비유(24:42-44)
  + 지혜있는 종과 미련한 종 비유(24:45-51)
  + 열처녀 비유(25:1-13)

3. 마지막 때를 위한 준비
달란트 비유(25:14-30)

4. 마지막 심판
양과 염소 비유(25:31-46)

  위와 같은 구분에는 항상 두 가지 문제가 숨어있다. 먼저는 이 구분이 사람마다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나의 구분이 저자인 마태의 구분에 얼마나 근접한 것인가이다. 상식적인 해석을 추구한다면 두 번째 문제를 위해 첫 번째 문제를 계속해서 점검하고 수정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노력을 위해 오늘 우리가 취해야 할 방법 중 하나가 성경 저자의 문체와 구조를 파악하여 최선을 다해 우리의 성경 해석을 맞추어 나가는 것이다.  
  문체(style of writting)는 문장에 나타난 개성적인 특색이다. 글 쓰는 사람의 스타일로 나만의 문장을 만드는 남다른 방법이다. 문체에 따라서 문장의 어구, 어법, 구조가 선택된다. 또 문체, 글 쓰는 스타일이 확대되면 글을 쓰는 서술자가 대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인식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글 쓰는 자의 "저작 의도" 또는 "저자의 관점"이라는 개념이 거론된다. 

  이것이 복음서를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들이 사용하는 일반적인 문체와 구조가 신약 성경 저자인 1세기 유대인들의 것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이 이미 학자들을 통해서 밝혀졌기 때문이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신약성경 저자들이 사용했던 문체와 구조는 오늘 우리들이 보면 이상하고 비논리적인 것으로 느껴질 만큼 다르다. 그래서 성경 저자들의 문체와 구조의 특징을 고려하지 않으면 우리의 문체와 논리로는 성경이 말하는 바를 온전히 알아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본문에 담겨져있는 문체와 구조적 특성을 찾아내는 작업은 보다 온전한 성경 이해를 위해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성경 본문 연구를 위해 가장 먼저 마태복음 24-25장에는 어떤 문체와 구조의 특징들을 찾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성경 본문이 자신을 이해하는 방법이라 제시해주는 가이드 라인을 얻을 수 있다. 

 


  1-1. 유사한 주제들의 반복과 논리적 상충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으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시간적, 순차적 입장에서 복음서를 읽는다. 이는 이 방식이 현대인들이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기에 그런 것이다. 실제로 전체적으로 보면 복음서도 시간적인 순서로 기술되었다. 하지만 마태복음 24-25장을 이 방식으로 보면 골치 아픈 문제를 만나게 된다. 
  마태복음 24-25장에는 여러가지 주제들이 반복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반복되는 주제들의 내용이 서로 상충되어 비논리적이고 모순되게 기록된 것과 같이 보이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본문을 해석하면 계속해서 논쟁거리를 만들게 되고 객관적인 신뢰성을 상실한 주장을 고집하게 된다.

  1)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환란'과 "미혹"의 주제이다.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주님의 첫 번째 대답인 4-14절에 "환란'과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 주제가 나온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단락인 15-26절에도 "환란'과 "미혹"의 주제가 또 나온다. 
  24:21절을 보면 15-26절에 나오는 환란은 창세 이후로 없었고 후에도 없을 "가장 큰 환란"으로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목격할 수 있는 역사적인 환란이다(24:15). 그러면 4-14절의 환란은 가장 큰 역사적 환란과 구별되는 "작은 환란"이 된다. 문제는 두 환란들을 역사적 순서로 볼 경우에 생긴다.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가장 큰 환란은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말하는 것으로 A.D 70년에 일어났다. 그러면 작은 환란은 A.D 70년 이전에 일어난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작은 환란의 끝에 세상의 끝이 온다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브레이크가 걸린다. 세상의 끝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지금까지 아직 세상의 끝은 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작은 환란과 가장 큰 환란을 단순히 시간적 순서로 보는 것은 실재와 전혀 맞지 않는다. 

  2) "인자의 임함(parousia)" 주제도 반복된다.

  세번째 단락인 30, 33절에 인자의 임함이 나온다. 그리고 36-44절에도 인자의 임함이 나온다. 문제는 30절과 33절의 임자의 임함은 제자들 당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루어질 사건인데(24:34), 36-44절의 인자의 임함은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는(24:36) 특정할 수 없는 미래의 때로 다르게 설명되었다. 
  인자의 임함을 순차적인 사건으로 해석하면 주님께서 종말에 두 차례 임하신다는 말로 해석하게 된다. 먼저는 1세기에 제자들이 볼 수 있게 일어나고 두 번째는 언젠지 모르는 때이다. 문제는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1세기에 예수님이 제자들이 목격할 수 있게 임하신 일이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성육신인 초림과 재림은 잘 알지만 그 사이에 제3의 임하심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질 않았다. 이 해석은 많은 신학적인 문제를 만든다. 

  이와 같이 마태복음 24-25장에는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사건 위주, 또는 시간 순서 위주의 관점으로는 원만한 해석이 어려운 주제와 사건의 반복이 많다.
  


  1-2. "산통의 때"(4-14)와 "가장 큰 환란의 때"(15-28)의 구조적 일치

  또 마태복음 24-25장에는 현대인들에게는 아주 익숙치 않은 구조적인 메세지가 많이 있다. 구조적인 메세지란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나 문장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는 방법이 아니라 단락 또는 글 전체 속에 문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글의 틀(구조)로 메세지를 드러내는 방법을 말한다. 
  구조적 메세지가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24:4-14의 "산통의 때" 말씀과 연이어지는 24:15-28의 "가장 큰 환란의 때" 말씀이다. 이 부분을 읽어보면 두 때는 구별되는 다른 때로 보인다. 하지만 단락 안에 있는 구조를 보면 두 말씀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된다.

 

  1) 우선 "산통의 때"에 나타나는 8가지 현상들을 "가장 큰 환란의 때"와 비교해본다.

  주님께서는 "가장 큰 환란의 때"의 특징을 두 가지 주제 "큰 환란"과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미혹"이라 설명하셨다(마 24:21, 23-24). 

 

  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4:23-24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주제를 가지고 바로 앞 단락인 4-14a의 "산통의 때"에 나타나는 8가지 현상들을 보면 아래 그림과 같이 정교하게 구성된 평행법을 찾아낼 수 있다.
   "미혹" 주제는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미혹"과 이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관련된 하부 주제들로 분류 가능하고, "환란" 주제도 두 가지 하부 주제로 분류 가능하다. 먼저는 전쟁과 기근, 지진 같은 "천재지변"이고 다음이 고소와 미움, 사랑이 식어짐 같은 "사람들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고통"이다. 이에 따라 정리하면 아래 모양의 문학적 구조가 만들어진다.

b1.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에 주의(4-5)
   b2. 난리와 난리 소문(6), 민족과 나라의 전쟁(7a)
           "끝은 아직 아니니라"
   b2'. 기근과 지진(7b-8)
        "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b1'. 제자들의 고난과 죽임 당함(9)
    b2". 사람들의 서로 고소와 미워함(10)
 b1".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11)
    b2"'. 불법 성행 사랑이 식어짐(12)    
 b1'". 끝까지 견딤과 구원 얻음(13)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14a)

  제기해야만 하는 질문은 이 구조가 우연히 된 것인지 아니면 마태의 의도에 따라 구성된 것인지 분별하는 것이다. 발견한 문학적 구조를 보면 두 주제의 규칙적인 반복을 우연히 된 것으로 볼 수 없다 판단된다. 
  우선 전체 구조는 4-8절의 내향적 평행법과 9-14a의 동의적 평행법의 결합이다. 이를 보다 세부적으로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미혹"에 해당하는 b1을 보면, "미혹"과 "제자도"라는 하부 주제가 동의적 평행법으로 번갈아 두 번 강조되어있다.

  b1.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에 주의(4-5)
    b1'. 제자들의 고난과 죽임 당함(9)
  b1".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11)
    b1'". 끝까지 견딤과 구원 얻음(13)

 그리고 환란이 주제인 b2도 하부 주제인  "전쟁과 천재지변"과 "인간관계의 고통"으로 각각 두 번 연속해서 강조되는 모양을 만든다. 

   b2. 난리와 난리 소문(6), 민족과 나라의 전쟁(7a)           
   b2'. 기근과 지진(7b-8)
     b2". 사람들의 서로 고소와 미워함(10)
     b2"'. 불법 성행 사랑이 식어짐(12)    
 


   2) 이런 구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몇 가지 있다. 
  먼저 이 구조는 "산통의 때"(4-14)"와 "가장 큰 환란의 때"(15-28)는 모두 미혹 주제와 환란 주제를 공통적인 기본 뼈대로 조직되었음을 보여주는 충분한 단서가 된다. 겉으로 보면 내용이 달라 다른 단락으로 보이는데 동일한 주제로 이루어진 동일한 구조가 있는 것은 적어도 두 단락을 전혀 다른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산통의 때의 8가지 현상들은 현대인에게 익숙한 시간적인 순서 또는 인과율에 따른 직선적인 논리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미혹과 환란이라는 두 주제를 유대인에게 익숙한 병렬적 논리에 따라 기록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또한 세 번째로 문학적 구조의 공통점을 조금 더 확대하면 "산통의 때"(4-14)"와 "가장 큰 환란의 때"(15-28)는 다른 두 개의 때가 아니라 말씀의 초점이 다른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하나의 때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러니까 "가장 큰 환란의 때"(15-28)의 주요 사건인 예루살렘 성전 파괴 사건은  "산통의 때"안에 포함되는 특징적인 한 사건이 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보면 산통의 때의 8가지 현상들은 결국 세상의 끝으로 이어진다(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주님께서는 먼저 세상의 종말 직전까지 일어날 산통의 때를 4개의 소주제(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 제자들에게 일어날 일들과 이에 대한 태도, 전쟁과 천재지변 그리고 인관관계의 악화로 일어날 일들)로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산통의 때 중에서 가장 큰 환란이 발생하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15-28절에 따로 집중해서 설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두 때를 관통하는 기본적인 뼈대가 미혹과 환란 주제로 같고, 그 주제들이 연달아 반복되어 강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에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가장 큰 환란의 때 단락(24:15-28)의 문학적 구조를 분석해 보면 정확하게 "환란" 주제와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 주제"로 나누어진다. 

  24:15-22은 환란 주제 중심의 문학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a. 성전 파괴의 시기 :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볼 때(15)
    b. 유대 땅에서 도망가라(16-18)
    b'. 가장 큰 환란으로부터 도망에 지체되는 것들을 주의하라(19-21)
  a'.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 : 환란의 날을 감해주심(22)

  그리고 24:23-28은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미혹이 중심 주제이다. 

  a.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23)
    b.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은 큰 표적과 기사로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24)
       x.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한다(25)
  a'.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26)
    b'. 인자의 임함은 은밀하지 않고 분명하다(27-28)

  위 구조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부분에서는 환란에 대한 설명이 성전의 파괴와 유대 땅에서 신속한 도피에로 집중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작은 환란의 때의 환란과 강조점이 다르다. 그러니까 작은 환란의 때에 대한 말씀과 가장 큰 환란의 때에 대한 말씀은 전체 주제와 구조는 같은데 환란에 대한 하부 주제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단락들 배후에 자리 잡고 있는 문학적 구조와 문학적 구조의 뼈대가 되는 주제들의 흐름을 보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작은 환란에 대한 단락과 가장 큰 환란에 대한 단락을 서로 다른 내용을 가진 단락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두 단락을 관통하는 구조가 같다는 것을 고려하면 해석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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