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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마태복음

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 : 마태복음 26-28장(1)

by 예다준 2022. 9. 1.

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 : 마태복음 26-28장(1)

 

 

  마태복음 26-28장을 문학적 구조 분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눈앞이 깜깜 해지는 난이도 최상의 성경이다. 성경을 구성하는 에피소드들의 숫자가 엄청 많다. 좋은 성경 해석은 성경이 담고 있는 말씀들을 빠짐없이 살피는 것임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것은 에피소드가 몇 개 안 되는 성경에는 적용이 쉽지만 30개가 넘는 에피소드를 모두 만족시키는 분석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분석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마태가 이곳에 사용한 평행법이 교차대조법, 동의적 평행법, 내향적 평행법, 그리고 변형된 평행법 등으로 아주 다양하다. 이는 성경 본문에 사용된 마태의 흔적들을 찾는 입장에서는 보통 작업이 아니다. 또 신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참조하지 않으면 도무지 풀기 어려운 본문이 있어 한참이나 애를 먹었다.
  문학적 구조 분석을 추구하는 것은 성경 저자가 내러티브를 어떤 관점에서 진술하고, 그래서 성경 저자는 무슨 문체와 구조를 사용했는지를 묻기 위한 방법이다. 즉 마태는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 죽으심 그리고 부활을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 그래서 어떤 메세지를 우리에게 주려고 서술하는가? 그리고 그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어떤 특징적인 문체와 구조들을 사용했는가? 등의 질문에 대답하려는 시도이다. 이 시도는 같은 수난 기사라 해도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모두가 다른 관점을 가졌다 생각한다. 그들은 모두 독특한 개성과 인격을 가졌기에 동일한 계시를 받았더라도 자신만의 문체와 구조를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복음서를 각자가 다른 관점과 다른 초점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야기를 서술한다면 성경 해석자는 다른 복음서의 연구 결과를 대충 끌어와서 성경을 설명할 수 없다. 마태만의 독특한 것을 발견해서 그것들이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지를 증명해야만 한다. 바로 이 작업들을 하기에 아주 곤란한 본문이 마태복음 26-28장이다. 


  요즘 학자들은 이전의 구분과는 달리 마태는 예수님의 수난 기사(26-27장)와 부활 기사(28장)를 하나로 묶어 마태복음의 마지막에 배치했다 생각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26-28장을 통틀어 "수난-부활 기사"(Passion- Resurrection Narrative)라 부른다. 이것은 단순히 신학적인 용어가 바뀐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는 관점이 바뀌었다는 의미를 가진 것이다. 후에 확인하겠지만 학자들의 주장이 올바르다는 것은 전체 문학적 구조를 보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일정한 규칙 하에서 이루어진 문학적 구조로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확인한 것이다. 

 

  이제 마태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1. 마태복음 26-28장의 문체와 문학적 구조를 찾아서

  마태복음 26-28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적 방식으로 전체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작업이 가장 쉽고 필수적인 방법이다. 이 분석에는 물론 개별적인 차이가 있다. 세세한 차이는 언제나 가능하기 때문에 개의치 않고 일단 분석을 해본다. 이 작업이 중요한 것은 결과물을 얻는 것 이외에 각 이야기들 사이에 존재하는 상부 구조와 하부 구조를 어떻게 나누는 것이 좋은가를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1-1. 현대적 단락 구분

  일단 특별한 구분없이 본문에 실린 이야기들을 순차적으로 열거해서 어떤 이야기들이 있는지를 빠짐없이 살펴본다. 

1.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 박힘 고지(26:1-2)
2.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모의(26:3-5)
3. 베다니 여인이 예수에게 향유를 부어 장사를 준비함(26:6-13)
4. 가롯 유다의 배반 제의(26;14-16)
5. 마지막 만찬 준비(26:17-19)
6. 제자중 하나가 예수 팔 것을 고지(26:20-25)
7. 떡의 말씀, 잔의 말씀(26:26-30)
8. 제자들의 배반 고지, 베드로의 세 번 부인 고지(26:31-35)
9.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26:36-46)
10. 가롯 유다의 키스(26:47-50)
11. 베드로의 반항과 체포됨(26:51-56)
12.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심문당함(26:57-68)
13. 베드로의 세 번 부인(26:69-75)
14.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모의, 빌라도에게 넘겨줌(27:1-2)
15. 유다의 자살(27:3-10)
16. 빌라도의 심문과 십자가에 넘겨짐(27:11-26)
17. 로마 군병들에게 채찍질과 희롱을 당함(27:27-31)
18.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짐(27:32)
19. 쓸개를 탄 포도주를 거부(27:33-34)
20. 로마 군병들이 예수의 옷을 제비 뽑다(27:35-36)
21. 죄패 문구와 좌우 강도(27:37-38)
22. 지나가는 자들의 희롱(27:39-40)
23.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의 희롱(27:41-43)
24.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의 희롱(27:44)
25. 예수의 죽음(27:45-56)
26. 첫 번째 외침과 엘리야를 부른다는 일화(27:45-49)
27. 예수의 죽음(27:50)
28. 성소 휘장이 찢어짐(27:51 a)
29. 무덤에서 자던 성도들의 일어남(27:51b-53)
30. 백부장과 함께 있던 자들의 고백 : 하나님의 아들(27:54)
31. 예수 죽음의 목격자들(27:55-56)
32. 예수를 장사함(27:57-61)
33.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칠까 염려되어 무덤을 지키게 명함(27:62-66)
34. 빈 무덤과 천사들의 부활 고지(28:1-7)
35. 여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 갈릴리로 가라는 명령(28:8-10)
36. 예수 부활을 도적질로 위장(28:11-15)
37. 11제자가 예수를 만남과 선교사명(28:16-20)

  무려 37개의 이야기들이 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이 부분을 성경보다는 영화나 다큐로 더 많이 접했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영화나 다큐에서 본 장면들이 회상된다. 그러면 마치 성경을 생동감 있게 읽은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성경 읽기는 만족스럽지 않다. 이는 마태가 어떤 내용의 이야기들을 사용했는지는 알려주지만 이 이야기들을 왜 사용했는지,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는지는 알려주지 않고 그냥 머릿속에서 필름이 돌아가듯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마태가 성경을 통해서 알리고자 하는 메세지이고, 메시지를 알려주므로 성취하려는 목적을 우리가 효과적으로 캐치하는 것이다. 이를 알아내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37개의 이야기들을 주제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다. 주제를 따라 분류한다는 것은 성경 저자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문맥의 흐름을 알아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자신이 설정한 영화의 문맥에 따라 장면 하나하나를 편집하고 영화적인 기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관점을 최대한 극대화시켜 영화를 관람객들에게 보여준다. 여기에서 해석자인 관객의 개인적인 차이가 확연하게 나타난다. 이른바 영화 마니아는 영화 속에 담긴 세계관과 감독의 의도, 영화적 기법들을 알아차리고 분석하지만 또 나 같은 관객은 그저 내용이나 짜릿한 장면 하나로 영화를 본다. 성경 해석도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개인적인 해석 차이가 성경 저자인 마태의 것에 얼마나 근접했느냐 일 것이다. 그러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보완되어야 한다. 그것을 본 연구에서는 마태의 문체와 구조를 따라서 전체 구조를 살펴보고 그를 통해서 메세지를 알아보는 방법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1-2. 마태복음 26-28장의 문체적 구조적 특성에 따른 분석

  앞에서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했으므로 이제 마태복음 26-28장에 존재하는 마태만의 흔적, 곧 그의 문체와 구조를 찾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 작업에는 다음과 같은 과정들이 필요하다.

  1) 먼저는 마태가 사용한 특징적인 문학적 기법들과 문맥을 따라 문학적 단락을 나누고,

  2) 각 문학적 단락의 구조(단락별 문학적 구조, 즉 미시적 구조)를 만들어서

  3) 미시적 구조의 의미를 분석하고

  4) 미시적 구조들을 통합한 거시적 구조(전체 구조)를 설정하고

  5) 거시적 구조가 말하는 메세지를 설명한다.

 

  경험에 의하면 이 작업들은 반드시 제시된 순서를 따라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 본문의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지만 대략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성경 본문은 문학적 특징이 잘 보이고 구조도 분석이 잘되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고 전혀 감도 잡히지 않는 본문도 있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잘 보이는 곳을 먼저 공략하고 그 본문에 알맞은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마태복음 26-28장과 같이 본문의 분량이 많고, 그 안의 이야기들이 많으면 한 번의 노력으로 전체 구조 분석은 거의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그럴 때는 각 단락의 미시적 구조를 하나씩 분석해나가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마태복음 26-28장의 단락 중에서 문학적 구조 분석이 가장 쉬운 단락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죽음 기사"가 있는 27:32-50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이곳을 공략한다. 

 

  1-2-1.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죽음 기사(27:32-50)의 특징과 구조 분석

  이 단락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죽음이 주요 내용으로 교차대조법을 탐색하고 완성하는데 모범 사례 같은 말씀이다. 마태는 각 절별로 대조가 될 수 있는 모티브들을 보기 쉽게 정열해 놓고 교차대조법을 차곡차곡 만들어 기록해놓았다. 본문을 읽어가면서 끊어지는 단락별로 단락의 맨 앞(32-33절)과 맨 뒤(50절)를 서로 대조하고, 다음에는 안쪽 단락(34절과 48절)을 대조하는 식으로 분석을 이어가다 보면 마지막으로 평행법의 중심(41-43절)이 만들어지는 즐거움을 느낄 것이라 말하고 싶다. 이런 방식으로 마태복음에 기록된 순서를 따라 평행법의 대조되는 짝을 짜 맞추면 전체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문학적 구조의 모양을 미리 정하지 않는 것이 분석을 쉽게 하는 요령이다. 어떤 모양이 나오는지 본문에 기록한 대로 순응한 후 문학적 구조를 분석하는 것이 가장 좋은 태도라 생각한다. 

  이런 방식으로 말이다.
  1) 50절은 "예수님의 돌아가심"이 주제이다. 그런데 32-33을 보면 주님께서 "골고다"에 도착한다. 골고다는 "해골"이다. 그러면 32-33절의 "죽음"(해골)과 50절의 "영혼이 떠나시다"는 표현은 서로 개념이 상응하여 하나의 짝을 이룬다. 단어나 문구가 나타내는 개념이 일치해서 평행법의 짝을 찾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경우이다. 


  2) 다음을 보자. 34절에는 "쓸개를 탄 포도주"가 나온다. 그리고 48절을 보면 "신 포도주"가 나온다. 두 포도주는 십자가에 달린 죄수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마시게 하는 용도가 같다는 점에서 대조되는 가능성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마태가 의도한 대조사항이 아니다. 두 구절은 모두 시 69:21의 반영으로 같다. 34절은 시 69:21a를 반영하고 48절은 시 69:21b를 반영한다. 

  시 69:21 "a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b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  

  동일한 소재로, 같은 시편을 배경으로 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단락의 상응 관계는 분명하다. 하지만 시편 69편은 고난 받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라 상응 관계는 신학적으로 더 깊다. 마태는 두 구절에서 십자가에서 고난 받는 메시야, 구약의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는 메시야를 대조하여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로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마태의 설명은 고난 받는 메시야를 보여주는 데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평행법의 짝으로 배치되면 강조점은 더욱 커진다.  

 

  3) 그다음 레이아웃은 구약성경을 배경으로 한 신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앞의 레이아웃보다는 조금 더 까다롭다. 35-36절은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아 서로 나누어 가지는 장면이다. 그리고 46-47절의 반대쪽 이야기는 주님께서 숨지기 전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는 장면이다. 언듯 보면 서로 상응되는 것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두 장면은 메시야의 고난을 예언한 구약 성경이 성취되는 사건으로 고난 받는 종을 묘사한 말씀으로 같다. 더 자세한 구약적 배경을 살펴보면 두 단락 사이의 관계가 깊게 보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런 방식으로 두 장면은 대조되는 짝이라 간주할 수 있다. 

 

  4) 네 번째 레이아웃인 37-38절과 45절은 앞 레이아웃보다 더 많은 신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37-38절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가 붙어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45절에는 주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어두움이 임했다는 설명이다. 
  이때 해석자에게 필요한 것은 유대인의 종말론적 주제들과 이미지들을 담고 있는 묵시문학에 대한 정보이다. 어두움이 임하는 것은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이 임할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유대인들은 이해했다. 유대인들은 구약과 묵시문학 전통을 통해 이것이 종말론적인 현상이라 알고 있다. 가장 잘 알고 있는 예가 출애굽 때 이집트에 어두움이 임하는 아홉번째 재앙이다(출 10:21-22). 그러니까 주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한 것"은 온 세상에 종말론적 심판이 내려졌다는 의미가 된다. 
  이러면 마태가 37-38절에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린 죄패를 드러내어 기록한 이유가 연결된다. 빌라도는 죄명으로 달아놓은 것이지만 이것이 역설적으로 예수님의 정체를 드러내는 선언이 된 것이다. 유대인의 왕, 곧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말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왕으로 등극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죄인으로 십자가에 죽인 온 세상에 심판이 가해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37-38절과 45절은 서로 상응한다. 


  5) 39-40절과 44절은 쉽게 이해된다. 둘은 모두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모욕하는 장면으로 같다. 39-40절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바라보며 "지나가는 일반인"들이 한 모욕이고, 44절은 십자가에 달린 다른 죄인들의 모욕이다. 두 모욕이 모이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모욕했다 이해할 수 있다.

  마태는 이 레이아웃을 통해서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예수를 모욕했다는 사실을 두 번 반복하여 예수를 죽인 책임이 특정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모두에게 있음을 강조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스라엘의 왕인 예수를 십자가에 달려 죽인 자들은 이스라엘 모두이다.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왕을 죽이고 모욕했으므로 온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해 반역 행위를 한 것이다.

 

  6) 그러면 마지막 한 단락 41-43절이 남는다. 이 부분이 평행법의 중심이다. 짝이 없이 혼자 있으므로 평행법의 모양은 교차대조법이 만들어진다. 이 부분도 예수님을 모욕하는 장면이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을 모욕하는 세 가지 사건의 두 번째이다. 하지만 교차대조법으로 보면 평행법의 중심이 되어 메세지의 핵심이 된다. 
  특히 여기에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장본인들(27:1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과 서기관이 나와서 예수님을 모욕했다. 그들은 예수에게 "이스라엘의 왕",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두 개의 칭호를 사용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빈정거리며 놀렸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이 있다. 그것은 두 가지로, 먼저는 이야기 전체가 "아이러니 기법"이고, 두 번째는 마태만의 특별한 자료가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먼저 마태의 표현이 독특하다는 점이다.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과 서기관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조롱하며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이라 놀린 것은 복음서에서 마태만의 표현이다. 마태의 표현과 가장 비슷한 마가는 단지 "하나님의 아들"만 사용하고(막 15:32), 누가나 요한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마태는 유독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드러내려 했다. 그런데 뒤에 이어지는 부활기사를 보면 이들의 빈정거림이 실제로 이루어진다. 백부장과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두려워 한다(27:54). 그러면 이들의 모욕이 어찌 되는 것인가? 역설적인 고백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예수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장본인들이 "당신은 참으로 이스라엘의 왕,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일이 일어나버리고 만다. 이것이 마태가 본문에서 그려주고 있는 아이러니 기법의 효과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운명하기까지 십자가에서 성취한 6개의 구약 예언 중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마태의 특수 자료이다. 마태는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한 이들이 십자가에서 예수에게 역설적인 신앙고백을 했다는 사실을 강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자신만의 특수 자료를 증거로 제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자료의 특수성과 문학적 구조에서 중심 메세지라는 점에서 마태의 강조점이 몰려있는 부분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7) 이런 방식으로 대조되는 짝을 찾은 후 편리대로 기호를 붙여 도식화하면 아래처럼 문학적 구조가 완성된다. 

a. 해골의 곳(32-33)
  b. 쓸개탄 포도주(34)
    c. 예수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눔(35-36)
      d. 유대인의 왕 죄패(37-38)
        e.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39-40)
          x. 이스라엘의 왕, 하나님의 아들(41-43)
        e'. 강도들의 욕(44)
      d'. 어둠이 임함(45)
    c'.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46-47)
  b'. 신 포도주(48)
a'. 돌아가심(50)

  교과서적인 교차대조법이다. 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모양이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히브리인의 평행법(교차대조법을 포함해서)은 레이아웃별로 메시지를 가진다. a레이아웃(a와 a')은 A라는 메세지를 가졌고 b레이아웃은 B라는 메세지를 가진다고 가정하면 A메세지와 B메세지가 서로 연결되어서 스토리의 흐름이 이루어진다. 이 메세지는 성경 본문이 말하고 있는 메세지를 보충해주지만 때로는 본문의 메세지를 이끌어가는 기능을 할 수도 있다. 이는 유대인들의 병렬적 사고가 본문의 내용보다 이 메세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마태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이런 방식의 구조를 구성해서 독자인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죄인의 비참한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속죄를 위해 고난받는 종 예수가 십자가에서 역설적인 이스라엘 왕으로 등극했다는 메세지이다. 마태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왕위 등극식을 보았고 그것을 이런 방식으로 묘사한 것이다. 

  십자가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레이아웃 별로 보면 보다 더 상세한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몇 가지를 추려본다. 
  1) 첫째로 예수는 하나님의 예언된 말씀을 성취한 왕이라는 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마태의 묘사에는 구약 성경의 성취를 암시하는 6개 구절이 있다. 

  1-2. 34절과 48절은 시 69:21의 성취를 암시한다. 
  3. 35절은 시 22:18의 성취를 암시한다.
  4. 39-40절은 시 22:7의 성취를 암시한다.
  5. 43절은 시 22:8의 성취를 암시한다.
  6. 46절은 시 22:1의 성취를 암시한다.

  마 27:32-50은 사건들로 나누면 10개의 사건이 있다. 이중 6개가 구약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고, 이를 교차대조법으로 보면 a 레이아웃인 골고다로 도착(a)과 십자가에서 돌아가심(a')과 d 레이아웃을 뺀 모든 레이아웃(아래 그림에서 빨간색)이 구약 말씀의 성취와 연관되어 있다.

 

a. 해골의 곳(32-33)
  b. 쓸개탄 포도주(34) -> 시 69:21
    c. 예수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눔(35-36) -> 시 22:18
      d. 유대인의 왕 죄패(37-38)
        e.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39-40) -> 시 22:7
          x. 이스라엘의 왕, 하나님의 아들(41-43) -> 시 22:8
        e'. 강도들의 욕(44)
      d'. 어둠이 임함(45)
    c'.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46-47) -> 시 22:1
  b'. 신 포도주(48) -> 시 69:21
a'. 돌아가심(50)

 

  유대인들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제시된 그림과 같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행동들이 구절마다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는 이미지가 하나씩 그려져 쌓였을 것이다. 이러한 마태의 증언 방법은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행하신 모든 행동들은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예수님의 강력한 의지의 산물로 보게 한다. 

  2) 예수는 고난 받는 메시야이다.
  1)의 결론을 보면 질문이 생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극악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구약 성경을 성취하려고 노력한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이다. 이를 그분의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보는 것은 아주 미흡한 설명이다. 이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성취한 구약 본문들이 유대인들에게는 "고난 받는 메시야"를 설명해주는 말씀이라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시편 22편은 초대교회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장사되심 그리고 부활해서 승천하심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비중 있게 인용하고 해석했던 메시야 시편이다. 시편 69편도 마찬가지이다.
  고난 받는 메시야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진노를 친히 담당하여 고난을 받는 구원의 메시야이다. 그러므로 고난 받는 메시야는 마태복음 수난-부활 기사의 처음 단락인 26장에 나오는 십자가-유월절의 어린양과 직결되는 메시야 모티브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유월절을 거행하심으로 이루려 한 메시야의 모습이 고난 받는 메시야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고난받는 메시야의 모습을 아주 실제적으로 예언해 놓았다. 이러한 예언들이 몰려서 성취된 순간이 메시야의 고난이 절정에 이른 상황인 십자가 위에서 일어난 것이라 마태는 설명해준 것이다. 


  3) 마지막으로 마태는 예수는 종말론적인 왕으로 등극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것은 d레이아웃에서 발견할 수 있는 깨달음이다. d레이아웃에는 십자가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가 달렸다는 말씀과 예수님의 임종 직전에 온 세상에 어둠이 임하는 현상이 대조된다. 이 현상은 "주의 날"에 임할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의 날은 종말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임재를 상징하는 날로 옛 시대의 종말과 새 시대의 도래가 교체되는 날이다. 그래서 주의 날은 "진노의 날"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에게는 구원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이때 일어나는 주요 묵시적 현상 중 하나가 어두움이 임하는 것이다(욜 2:31, 행 2:20).

  요엘 2: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유대인들은 십자가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등극하신 예수님과 주의 날에 임하는 어두움을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다. 그 결과 마태의 설명을 듣는 독자들은 주의 날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진노가 십자가에서 왕으로 등극한 예수로 인해 이루어졌다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구조 분석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을 들자면 마태는 십자가에서 예수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프리즘을 제공해주려 했다는 것이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당한 십자가 죽음을 일어난 일 그대로 보고하는 것을 넘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설명하려했다. 그것은 예수의 죽음은 십자가에 달린 죄인의 비참한 죽음이 아니라 고난받는 메시야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높임을 받은 영광스러운 등극식이다. 하지만 마태의 설명은 오늘 우리들이 취하는 방식과 달리 병렬적 논리에서 사용되는 문학적 구조와 암시적인 구약의 성취 문구, 그리고 아이러니 기법, 구약과 묵시문학적 이미지와 개념들의 사용 등과 같은 문체적 특성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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