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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마태복음

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 : 마태복음 26-28장(2)

by 예다준 2022. 9. 2.

 

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 : 마태복음 26-28장(2)

 

 

  1-2-2. 빌라도의 예수 심문 기사(27:11-31)의 특징과 구조 분석

  마태복음 26-28장에서 구조 분석이 두 번째로 쉬운 단락은 27:11-31 빌라도의 예수님 심문 기사 부분이다. 이 부분은 주님께서 빌라도에게 끌려와서 심문을 당하시고 십자가 형이 확정된 후 골고다에 끌려가기 전의 상황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이야기체로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스토리의 전개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면 말(단어나 문구)이나 행동에 대조되는 짝이 보인다.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을 당하신 기사에 담겨진 마태의 저작 의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1) 예수를 죽인 책임을 빌라도가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돌리는 경향이 아주 강하다.
  빌라도와 그의 아내 사이에 있었던 대화(27:19)와 빌라도가 자신의 무죄임을 드러내기 위해 손을 씻은 행동(27:24)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마태만의 특별한 보고이다. 마태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할 때에 일어난 일 중 특히 두 사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생각하여 그의 복음서에 이 사건들을 제시한 것은 분명하다. 빌라도의 아내가 예수는 의인이므로(27:19 "옳은 사람") 그의 죽음에 관여하지 말라 충고했고 빌라도는 손을 씻어 책임이 없음을 선포했다 하더라도 예수의 죽음에 대한 그의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태가 이 사건들을 일부러 기록한 것은 예수의 십자가 형벌은 빌라도가 자발적 결정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외압이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마태는 빌라도가 예수를 옹호해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마태는 자기 자신을 전혀 변호하지 않는 예수의 태도에 대해 빌라도는 놀라 이상히 여겨 "저희가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거하는지 듣지 못하느냐?"라고 다그치면서 스스로를 방어할 것을 촉구했다(27:13-14). 이에 더 나아가 빌라도는 예수가 시기를 받아 넘겨 준 줄을 눈치채고 대리 변호를 두 차례나 했다 보고했다. 먼저는 예수를 특사로 풀어주기 위해 바라바와 예수를 선택하게 한 것이고(27:15-18), 두 번째는 무리들이 막무가내로 예수 처형을 고집부리자 빌라도가 "어쩜 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라고 예수를 처형할 이유를 되물은 일이다(27:23).


  마태가 빌라도를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않은 것은 빌라도를 압박해서 예수를 죽인 자들의 책임이 더욱더 무거워지게 하려는 의도로 읽혀진다. 마태는 빌라도를 압박한 주인공들을 공개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그리고 그들에 의해 선동되어(27:20) 예수의 십자가형을 두 번이나 강권한 "무리"들이다. 마태의 묘사를 보면, 무리들의 예수 죽음에 대한 요구에는 논리도 이유도 없는 무조건적인 억지였다. 빌라도는 무리에게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이유를 물었지만 무리들은 이 질문에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더욱 소리 질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강요했고(27:23), 이에 빌라도는 민란이 날까 두려움에 빠지게 되었다 보고한다(27:24). 무리의 예수님에 대한 묻지 마 식의 거부는 결국은 정상적인 마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충격적인 맹세를 해버렸다(27: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하거늘"

  이 맹세는 육신적인 이스라엘의 멸망을 담보로하는 자기 저주가 되어 주후 70년 성전 파괴로 성취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특권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마태는 위와 같은 강조점을 본문의 내용으로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본문에 만들어 놓은 문학적 구조로도 확인 가능하게 표시해 두었다. 마태는 빌라도의 아내가 예수를 의로운 자라 말하는 장면(27:19)과 이스라엘이 예수 죽인 죄를 자기와 자기 자손에게 돌리라 장담하는 장면(27:25)을 교차대조법의 세 번째 레이아웃으로 만들어 서로 대조하도록 배치했다. 이로서 빌라도의 재판은 예수에 대한 재판이 아니라 무죄한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간 이스라엘에 대한 재판이 된다. 

 2) 마태가 그리는 빌라도의 재판의 가장 큰 특징은 재판정에서 왕으로 등극하는 예수를 강조하는 아이러니 기법이다.
  마태의 빌라도 재판 기사의 시작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27:11). 이것은 본문의 교차대조법의 최외곽 레이아웃의 시작(a)이다. 그리고 교차대조법의 중앙에 가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27:22)라는 빌라도의 질문이 나온다(x). 그리고 교차대조법의 최외곽 마지막 단락(a')을 보면 빌라도가 군병들에게 예수를 넘겨주고, 군병들이 예수를 로마 황제와 같이 만들어 경배하는 놀이를 한다. 이때 군병들은 황제를 의미하는 소품(홍포는 황제의 자주색 옷을 가시관과 갈대는 왕관과 왕의 홀을 의미한다)으로 예수를 황제로 분장시킨 후 황제에게 돌리는 환호인 무릎을 굻고 "평안할지어다"라 예의를 표한다. a-x-a'로 이어지는 문맥의 흐름은 마치 빌라도가 예수를 황제와 같이 추대하는 모양새로 로마가 예수께 경의를 표하는 역설적 왕위 등극식을 연출해준다.

 

  물론 마태가 언급한대로 로마 군병들의 행위는 예수를 희롱하는 것이었다(27:29). 하지만 시야를 넓혀보면 로마 군병의 희롱이 결국 두려움의 신앙고백으로 바뀐다. 27:27-31에서 로마 군병들은 예수를 황제로 경배하는 희롱을 했다. 27:37을 보면 그들은 예수의 십자가에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여 희롱의 강도가 극에 이른다. 하지만 27:54에 가면 예수의 십자가를 처음부터 목격한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심히 두려워하며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다. 희롱이 두려움으로 바뀌고, 장난으로 한 왕위 등극식이 진짜 왕에 대한 경배로 바뀌는 반전이 십자가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마태는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이러니"라는 문학적 기법이다. 이 기법은 병행되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기사"(27:32-50)에도 동일하게 사용된다(앞의 1-2-1을 참고하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기사"에서 마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종말론적 심판주로 등극하시는 아이러니를 사용했다. 아이러니의 목적은 극적인 역전, 희극적 요소를 제공해서 독자들에게 감동과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다. 이 기법을 히브리적 문학적 구조 안에서 두 번 연속으로 강조하므로 마태는 그의 수난-부활 기사의 중심 메세지를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그리고 종말론적 심판주로 등극하심으로 만든 것이다. 

  이상의 특징들을 통해서 마태는 다음과 같은 교차대조법으로 표현했다. 
  
a.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11-14)
  b. 바라바냐 그리스도라하는 예수냐(15-18)
    c. 빌라도 아내의 의인 예수 당부(19)
      x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20-24)
    c'.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25)
  b'. 바라바는 놔주고 예수는 십자가로(26)
a'.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27-31)

  a레이아웃은 "유대인의 왕"으로 공동 주제를 이루어 대조되는 짝을 이룬다. 설명한 대로 이 대조는 마태의 아이러니의 시작과 결론으로 기능한다.


  b레이아웃은 "바라바 vs 예수" 구조로 서로 상응한다. b는 예수를 구하고자 하는 빌라도의 제시이다. 그러나 b'에서 이스라엘은 결국 예수를 버리고 바라바를 선택한다. 어떤 학자들은 바라바 vs 예수의 구조에 주목할만한 문학적 의미가 있다 주장한다. "바라바"(Βαρ-αββάς)는 아람어 "바르-아바"(בר-אבא)로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의미이다. 이 이름은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칭호와 비슷하다. 또 마태복음의 유력한 다른 사본들을 보면 바라바의 이름이 "예수 바라바"(Jesus Barabbas)로 나온다. 이런 연유로 공동번역은 27:17을 이렇게 번역했다. 


  "빌라도는 모여든 군중에게 "내가 누구를 놓아주면 좋겠느냐? 바라빠라는 예수냐? 그리스도라는 예수냐?" 하고 물었다" 

 

  그러면 예수 vs 바라바의 구조는 "(그리스도) 예수 vs (바라빠, 아버지의 아들) 예수"의 구조가 되어 "메시야 예수 vs 다른 메시야 예수"의 선택 구조가 된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폭도 바라바를 선택한 것은 참 메시야를 버리고 다른 메시야를 선택했다는 의미가 되어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선택에 극적인 긴장감을 더해준다. 이 주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예수 vs 바라바의 구조는 참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하고 거부한 이스라엘의 어두움과 어리석음을 크게 부각하는 메세지임은 분명해 보인다.

 


  c레이아웃은 누가 진짜 죄인인지를 알려주는 일을 한다. 빌라도의 아내는 빌라도에게 예수를 의인이라 증언했다(c). 이것은 빌라도 부부만 알고 있을 은밀한 사건일 것이다. 하지만 마태는 이를 포착해서 집중 보도하므로 예수님의 무죄를 변증한 것이다. 이것에 대조되는 구절이 27:25의 유대인들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는 선언이다(c'). 무죄한 피를 흘리고도 뻔뻔하고 대담한 선언을 서슴지않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사악하고 더러워졌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교차대조법의 중심인 x는 빌라도가 이스라엘에게 물은 질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은 교차대조법의 중심에서 아이러니의 역전을 만들었다. 빌라도는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묻고(x) 군병들을 시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는(a') 하나님의 아이러니의 도구가 되었다고 마태는 증언했다.

 

  빌라도의 예수 심문 기사를 보면 빌라도는 심판관 보다 예수님의 변호사같이 보인다. 그리고 예수님은 빌라도와 빌라도의 아내를 통해 무죄하며 의로운 자라는 것이 계속해서 암시된다. 이에 반해서 이스라엘의 악함이 더 이상 어떤 설득도 가능하지 않은 극단적인 상태로 묘사되었다. 예수에 대한 두 이해의 갈등이 절정적으로 극화된 것이 예수님과 바라를 대조하는 장면이다. 결국 이야기의 흐름은 유대인들의 승리로 돌아가 예수의 죽음이 확정되는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빌라도와 로마 군병들은 예수를 황제로 추대함으로 십자가 앞에 선 예수를 황제로 높이는 것으로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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