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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마태복음

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 : 마태복음 26-28장(4)

by 예다준 2022. 9. 2.

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 : 마태복음 26-28장(4)

 

 

  1-2-4. 십자가-유월절 기사(26:1-57)의 특징과 구조 분석

  이 단락은 구조 분석으로 보면 중상 정도의 난이도를 가진 성경으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마 26:1-57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형을 받기 위해 체포되어 두 차례의 심문을 받기 전의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연구자마다 세세한 것은 다르지만 아래와 같이 대략 12개의 사건들이 연이어 기록되어 있다. 

1.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 박힘 고지(26:1-2)
2.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모의(26:3-5)
3. 베다니 여인이 향유를 부어 예수의 장사를 준비함(26:6-13)
4. 가롯 유다의 배반 제의(26;14-16)
5. 마지막 만찬 준비(26:17-19)
6. 제자 중 하나가 예수 팔 것을 고지(26:20-25)
7. 떡의 말씀, 잔의 말씀(26:26-30)
8. 제자들의 배반 고지, 베드로의 세 번 부인 고지(26:31-35)
9.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26:36-46)
10. 가롯 유다의 키스(26:47-50)
11. 베드로의 반항과 제자들의 도주(26:51-56)
12. 체포됨(26:57)

  이 기사들은 전체적으로 시간 순서로 진술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이 마태의 중점적인 기술 전략이 아니다. 이 단락에서 발견되는 마태의 중심 기술 전략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유월절과 깊이 관련된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증명하는 것이다. 이를 "십자가-유월절"이라 부른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지키던 유월절과 구분하는 명칭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출애굽 이래로 유대인들이 지켜왔던 전통적인 유월절인 "출애굽-유월절"을 지켰다. 하지만 예수님의 유월절은 유대인의 유월절을 성취하고 대치하는 새 유월절이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유월절은 옛 유월절이 되고 예수님의 유월절은 새 유월절인 "십자가-유월절"이 된다. 
  이 단락에서 마태는 예수님께서  "출애굽-유월절"을 "십자가-유월절"로 바꾸기 위해 감행한 두 가지 작업을 중점적으로 설명해주었다. 먼저는 "십자가-유월절"이 될 수 없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반전된 일들이고, 두 번째는 예수님의 예고대로  "십자가-유월절"이 진행되는 일들이다.

 

  첫 번째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십자가-유월절"이 될 수 없는 여러 가지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이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유월절" 예고를 성취하는 반전 드라마가 되었다는 사실이 본문에 나온다. 이 사건들은 사람의 눈으로는 부정적이고 악한 것들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유월절"을 성취하는 재료들이 되어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예수님의 뜻대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해준다. 

  제일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십자가-유월절"이 될 수 없었던 부정적인 조건들이 반전의 결과를 만들어낸 경우를 보자.
  1)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유월절에 예수를 죽이지 말자 결정했다 마태는 말했다. 그들은 민요가 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26:3-5).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유월절과 상관없는 죽음이 된다. 하지만 이 계획은 유다의 갑작스런 배반으로 유월절로 확정된다.


  2) 예수를 팔겠다 작정하고 돈을 받은 유다는 언제 배반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하고 최후의 만찬이 있을 낮에도 기회만 찾고 있었다(26:16). 그날 저녁에 예수님과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이 있고, 다음 날 새벽에 예수님은 체포되고 십자가 처형이 이루어져야 십자가-유월절의 로드맵과 일치하게 된다. 하지만 주저하던 유다가 그날 밤에 갑자기 배반을 결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유다가 조금만 주저하면 예수님의 죽음은 유월절과 관련이 없어지게 된다.
  하지만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 유다는 배반을 결심한다. 여기에서 마태는 예수님께서 유다가 배반할 것을 공식 자리에서 천명한 것을 기록했다. 마태의 묘사를 보면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주님께서 배반자가 유다라 직접 지목하신다(26:25). 마가와 누가는 제자의 배반을 말하지만 누군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게 묘사했다. 요한은 배반자가 가롯 유다임을 암시하는 행동을 예수께서 하셨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인을 알아채는 자는 없었다고 말했다(요 13:26-30). 이에 비해 마태는 자기가 예수를 팔 자인가라 묻는 유다의 물음에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직답을 하셨다(26:25). 예수님의 공적인 배반 폭로와 그 제자에 대한 저주를 듣고 유다는 최후의 만찬에서 배반을 결행했다. 아마도 유다는 주사위는 이미 던져져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유월절 만찬과 유다에 대한 자극이 유다의 배반 결심과 유대인들이 예수 죽일 일정을 바꾸는 데에 결정적인 원인이 된 셈이다. 주님께서 유다의 배반을 자극해서 유월절에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도록 통제한 것이다. 
  유대인들의 악한 계획과 유다의 악한 배반이 서로 맞물려 예수님의 카이로스를 성취하는 재료가 되는 것이 놀랍다. 이로서 십자가-유월절을 이루기 위해 결정적인 두 가지 환경이 마련된다.

 

   또한 마태는 예수님의 십자가-유월절 예고대로 일이 진행된다는 느낌을 주는 표현을 사용했다. 
  1) 26:2에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십자가에서 죽게 될 것이라 예고하셨다. 그리고 26:3을 보면,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서 예수 죽일 모의를 한다 묘사했다. 마치 예수님의 예고가 떨어지기 무섭게 예수님의 예고가 이루어질 일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주 작은 표현이지만 마태는 예수님의 의지대로 일이 척척 진행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준다. 


  2) 제자들의 배반과 도주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 

  에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는 과정에서 제자들이 체포되어 불행한 일이 생기거나 예수를 부인하고 변절자가 되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이 경우들은 복음서 기자의 관심거리가 될 수 밖에 없다. 실재로 사도 요한은 전자에 관심을 두고 주님께서 체포될 때에 제자들의 신변을 보호했다는 이야기를 보고했다(요 18:8-9).

  마태는 후자에 관심을 집중했다. 마태는 예수를 버리고 도주하고 부인하고 저주하는 제자들의 비참한 모습은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 있었다 보고했다. 26:31의 "나를 버리라"는 제자들의 배신과 도주를 대표하는 예수님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나 때문에 넘어질 것이다(스칸달리조, σκανδαλίζω)"로 번역할 수도 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배신이 슥 13:7에 이미 예언된 것이라 말씀하셨다.

  스가랴의 예언을 보면, 하나님의 칼이 하나님의 동료인 목자를 치자 양 떼가 흩어진다. 그 양 떼 중 1/3이 연단되고 정화되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스가랴의 예언을 중심으로 보면 제자들의 "버림"은 "넘어짐"에 더 가깝다. 제자들이 예수를 버림으로 예수가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자 자신들이 넘어진다. 이 일로 제자들은 연단되고 정화되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탄생한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배반과 도주는 십자가-유월절을 거친 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부활의 예수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제자들로 거듭나는 관문이 되는 것이다. 제자 전부가 예수를 버리고 도망가지만 이것은 십자가-유월절 예고를 방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연단되고 정결한 메시야의 제자들이 탄생해서 십자가-유월절의 열매가 된다. 

  3) 사실 마태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유월절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그리는 것은 예수님의 전략을 그대로 묘사한 결과일 따름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유월절과 딱 맞아떨어지게 하기 위해 보다 더 적극적인 일을 하셨다. 이를 가장 강력하게 보여주는 것이 의도적으로 유월절 만찬을 하루 앞 당겨 행한 것이다.

  예수님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일반 유대인들의 유월절 만찬보다 하루 일찍 거행했다.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26:18을 보면 "나의 때(카이로스)"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 목적을 분명히 표하셨다. 가장 먼저, 나의 때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만찬 장소를 친히 예약하셨다(26:18-19). 만찬 장소인 집을 빌려준 사람은 예수님께 대단한 헌신적인 사람이고,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의 때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는 주님께서 그 사람에게 집을 빌리면서 그에게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라 말하라 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어쨋든 예수님의 십자가-유월절을 위해 제자들 외에 아주 헌신적인 조력자가 동원되었고, 주님께서 계획을 진행하는 바로 그 날 장소가 마련되었다. 

  그 날 해 저물 때(우리 시간으로 목요일 오후 6-9시 사이) 만찬은 거행되었다(26:20). 그때는 일반 유대인들의 유월절(금요일 오후 3-6시 사이) 만찬보다 대략 하루가 앞당겨진 때이기에 유월절에 잡는 어린양의 고기가 없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유월절은 유월절 양 대신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떡으로 대체된다. 그러면 아래 도표와 같이 유대인들이 유월절 양을 잡아 유월절 만찬을 준비할 때가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는 시간과 같은 때(금요일 오후 3시-제구 시)가 된다. 

 

마태복음 26-28장의 십자가-유월절과 출애굽-유월절 시간 비교


  이와 같은 시간의 안배는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하루를 앞당겨 만찬을 거행한 이유를 분명히 보여주는 단서들이 된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다른 유대인들과 같은 날 유월절 만찬을 했다면 십자가-유월절 떡이 유월절 어린양의 고기를 대체할 수 없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을 상징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이상 주님과 제자들의 만찬은 "십자가-유월절"이 될 수 없게 된다.
   마태는 이상의 조건들이 예수님의 예고대로 하나씩 이루어져 결국 예수님의 유월절 만찬이 예수님의 때(카이로스)를 상징하는 성공적인 "십자가-유월절"이 되었다 말하는 것이다. 

  마태는 위에서 언급한 것들을 이야기의 진술 방법 외에 다른 수단인 문학적 구조를 통해 대단히 정교하고 조직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는 예수의 십자가-유월절을 성취하는데 수단이 되었던 것들을 동원해서 서로 대조의 짝으로 배치해 전체 구조를 만들었다. 먼저 예수를 죽일 계획을 세우고 십자가 형이 이루어지도록 주도한 산헤드린 공회(대제사장들과 장로들), 두 번째는 가롯 유다, 세 번째는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있다. 이들은 문학적 구조에서 a, c, d로 표시할 수 있다. 그리고 십자가-유월절의 완벽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예수께서 친히 행한 두 개의 일로 d와 d'가 있고,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를 준비하는 두 가지 사건으로 b와 b', 마지막으로 십자가-유월절의 의미를 설명한 가르침(떡의 말씀, 잔의 말씀) x가 있다. 여기에서 알파벳 순서는 성경본문에 나오는 순서를 따라 부여한 것이고 마지막 x는 교차대조법의 중앙이기에 부여한 알파벳이다. 

  이러한 순서대로 본문을 구조화해 본다. 
  1) 제일 먼저 대제사장과 장로에 대한 내용이 처음인 26:3-5과 마지막인 26:57에 나온다. 이것은 각각 a와 a'가 된다. a에서 대제사장과 장로가 예수를 죽일 모의를 하고 a'에서 예수가 체포되어 대제사장과 장로에게 끌려온다. 이야기의 시작과 결말이 정확하게 맞아 완벽한 대조의 짝으로 하나의 레이아웃을 만든다.


  2) 그다음 레이아웃은 발견하기에 생각보다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는 성경 본문에 대한 이해를 한 가지로 고정되게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해석자가 해석의 전제에 붙잡혀 해석의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대제사장과 장로의 모의 다음에 "한 여인이 향유를 부은 사건"이 나온다(26:6-13). 이 이야기와 상응하는 것은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이다(26:36-46). 두 사건은 이른바 유명한 본문이다. 그래서 본문에 대한 해석이 뻔하고, 그 해석으로 비교해 보면 상호대응 사항이 보이질 않아 해석의 장벽에 서게 된다.  

  하지만 본문을 이해하려는 관점을 달리하면 대응점이 보인다. 한 여인이 향유를 부은 사건은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내(예수님의) 장사를 위하여 한 일"이다(26:12). 이 여인은 예수님의 죽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준비했다. 이것을 b라 하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준비한 사건이 발견된다. 그것이 26:36-46의 겟세마네 기도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주님께서는 기도로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된 마음"을 십자가 죽음에 맞게 준비하셨다.

  우리는 이제까지 두 사건이 서로 연결된 사건으로 배우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건을 연관지어 생각하는 눈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마태의 전망에서 보면 두 사건은 전혀 별개의 사건이 아니다. 이를 증거 하는 것이 두 사건이 평행법에서 짝으로 배치된 것이다. 

 

  3) 한 여인의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한 사건 다음에 가롯 유다의 배반 제의(26:14-16)가 나온다. 이 사건은 26:47-50에서 가롯 유다의 배반의 키스로 실행되고 대조되는 짝이 된다. 이것이 c와 c'가 된다.

 

  4) 가롯 유다의 배반 제의 다음에 예수님께서 "나의 때"(카이로스) 준비하기 위해서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신 기사(26:17-19)가 나온다. 이것을 d로 보면 26:51-56에 주님께서 자신의 때를 성취하기 위해 체포되고, 제자들의 배신과 도주를 막지 않는 사건이 보인다(d'). 두 사건은 주님께서 직접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는 것이라 마태가 설명한 사건으로 예수의 때(카이로스)를 성취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같다.

 
  일단 a-d까지 네 개의 레이아웃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은 모양이 나온다.

a.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모의(26:3-5)
  b. 한 여인이 향유를 부어 장사를 준비함(26:6-13)
     c. 가롯 유다의 배반 제의(26:14-16)
       d. "나의 때"(카이로스) 준비(26:17-19) 
       --------------
  b'. 예수님이 기도로 죽음을 준비함(26:36-46)
    c'. 가롯유다의 키스(26:47-50)
      d'. 예수의 때 성취를 위한 체포됨(베드로의 반항), 제자들의 도주(26:51-56)
a'.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에게 끌려감(26:57) 

  a'의 위치가 변형된 동의적 평행법이다. 그림을 보면 a'의 위치가 맨 뒤로 간 이유가 쉽게 납득된다. 일단 사건이 그런 순서로 일어났기에 이런 모양이 된 것이다. 하지만 구조로 보면 a'의 위치가 맨 뒤에 배치됨으로 전체 구조가 완벽하게 하나로 구분되어 시작과 종결이 분명하다. 완벽한 한 단락이 이루어진다.

 

  5) 다음 이어지는 본문은 마지막 만찬 본문이다. 이 부분은 세 단락으로 나누어진 것이 쉽게 보인다. 

  26:20-25 : 제자 중 하나가 예수 팔 것을 고지
  26:26-30 : 떡의 말씀, 잔의 말씀
  26:31-35 : 제자들과 베드로의 세 번 부인 고지

  두 개의 배반 고지 단락과 한 개의 말씀 단락이다. 두 개의 배반 고지 단락은 가롯 유다의 배반과 나머지 제자들의 배반, 특히 베드로의 세 번 부인이 내용이다. 그렇다면 떡의 말씀과 잔의 말씀을 중심으로 양쪽에 제자들의 배반에 대한 고지가 자리 잡고 있는 모양새로 영락없는 교차대조법이다.

  이 부분은 두 가지 방법으로 도식화 할 수 있다 생각된다. 먼저는 가롯 유다의 배반을 중심으로 앞의 배반 고지는 가롯 유다의 배반이므로 c로 표기되고, 뒤의 배반 고지는 제자들의 배반이므로 d로 표기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26:20-35은 다음과 같은 도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

  c. 가롯 유다의 배반 고지(26:20-25) 

          x. 떡의 말씀, 잔의 말씀(26:26-30)
     d. 제자들과 베드로의 세 번 부인 고지(26:31-35)

 

  두번째 방법은 두 개의 배반 고지를 따로 떼어 표기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가롯 유다의 배반은 e로 표기되고, 제자들의 배반은 e' 표기되어 아래와 같은 도식이 된다.

 

  e. 가롯 유다의 배반 고지(26:20-25) 

     x. 떡의 말씀, 잔의 말씀(26:26-30)
  e'. 제자들과 베드로의 세 번 부인 고지(26:31-35)


  6) 십자가-유월절 단락의 각 부분 구조가 완성되었다. 이제는 세 개의 구조를 결합하여 완성하면 이렇게 된다.

a.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모의(26:3-5)
  b. 한 여인이 향유를 부어 장사를 준비함(26:6-13)
     c. 가롯 유다의 배반 제의(26:14-16)
       d. "나의 때"(카이로스) 준비(26:17-19)
     c'. 가롯 유다의 배반 고지(26:20-25)
               x. 떡의 말씀, 잔의 말씀(26:26-30)
       d'. 제자들과 베드로의 세 번 부인 고지(26:31-35)
  b'. 예수님이 기도로 죽음을 준비함(26:36-46)
    c". 가롯 유다의 키스(26:47-50)
      d". 예수의 때 성취를 위한 체포됨(베드로의 반항), 제자들의 도주(26:51-56)
a'.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에게 끌려감(26:57) 

 

  또는 다음과 같은 모양이다. 편리를 위해 앞의 모양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a.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모의(26:3-5)
  b. 한 여인이 향유를 부어 장사를 준비함(26:6-13)
     c. 가롯 유다의 배반 제의(26:14-16)
       d. "나의 때"(카이로스) 준비(26:17-19)
         e. 가롯 유다의 배반 고지(26:20-25) 

           x. 떡의 말씀, 잔의 말씀(26:26-30)
         e'. 제자들과 베드로의 세 번 부인 고지(26:31-35)

  b'. 예수님이 기도로 죽음을 준비함(26:36-46)
    c". 가롯 유다의 키스(26:47-50)
      d". 예수의 때 성취를 위한 체포됨(베드로의 반항), 제자들의 도주(26:51-56)
a'.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에게 끌려감(26:57) 


  위 구조는 분석은 다 되었지만 복잡하고 정리가 되지 않아 손쉬운 이해를 위해 수정이 필요하다. 특히 두 가지가 미흡하다. 먼저 26:3-19과 26:36-57이 이루는 동의적 평행법에 대한 구분이 없어 구조적 특징을 살리지 못한다. 그리고 가운데 단락이 교차대조법을 가진 것도 살리지 못한다. 그러면 세 단락을 눈에 띄도록 구분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A. 십자가-유월절 준비 1(26:3-19)
  X. 십자가-유월절 만찬(26:20-35)
A'. 십자가-유월절 준비 2(26:36-57)

 

  26:3-19과 26:36-57이 만드는 동의적 평행법을 십자가 -유월절 준비로 요약하고 동의적 평행법이 두 개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십자가 -유월절 준비 1"과 "십자가 -유월절 준비 2"로 구분한다. 그리고 가운데 교차대조법을 "십자가-유월절 만찬"으로 요약하면 간단하면서도 마태가 나타내려는 메세지를 살린 구조가 될 것으로 보인다.


  7) 여기에 분석에서 빠진 1-2절을 도입구로 분류하여 첨가하면 전체 구조는 아래와 같이 완성된다.

도입 : 십자가-유월절 고지(26:1-2)
A. 십자가-유월절 준비 1(26:3-19)
a.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모의(26:3-5)
  b. 한 여인이 향유를 부어 장사를 준비함(26:6-13)
     c. 가롯 유다의 배반 제의(26:14-16)
       d. "나의 때"(카이로스) 준비(26:17-19)

  X. 십자가-유월절 만찬(26:20-35)
      c'. 가롯 유다의 배반 고지(26:20-25)
             x. 떡의 말씀, 잔의 말씀(26:26-30)
        d'. 제자들과 베드로의 세 번 부인 고지(26:31-35)

A'. 십자가-유월절 준비 2(26:36-57)
  b'. 예수님이 기도로 죽음을 준비함(26:36-46)
    c". 가롯 유다의 키스(26:47-50)
      d". 예수의 때 성취를 위한 체포됨(베드로의 반항), 제자들의 도주(26:51-56)
a'.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에게 끌려감(26:57) 

  마태복음 26:1-57은 동의적 평행법 중간(A, A')에 교차대조법(X)이 삽입되어 전체가 교차대조법을 이루는 구조를 가진 말씀이다. 아마도 마태복음에서 손에 뽑을 정도로 정교한 평행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A와 A'는 십자가-유월절 준비 1, 2로 구분 가능하고, X는 십자가-유월절 만찬이다. A와 A'는 동의적 평행법으로 서로를 설명해준다. A를 준비라 보면 A'는 준비가 성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X에서도 십자가-유월절 성취를 위한 예수님의 사역이 실행된다(c', d'). 결국 주님께서는 성공적으로 십자가-유월절 만찬을 수행하신다(X). X-x는 전체 구조의 핵심으로 십자가-유월절의 의미를 주님께서 설명해주신 메인 메시지 "떡의 말씀, 잔의 말씀"이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만찬에서 자신들이 먹고 있는 음식들의 구약적 유래를 자녀들에게 설명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 설명의 주제는 모세의 출애굽 사건으로 여기에서는 "출애굽-유월절"로 칭한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언급하신 떡의 말씀, 잔의 말씀은 유월절 음식의 유래를 설명하는 유대인들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하지만 십자가-유월절 만찬에서 지향하는 출애굽과 나눈 음식들의 의미는 출애굽-유월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근본적인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유월절 만찬은 모세의 출애굽 사건을 뛰어넘어 십자가를 통해 죄로부터 탈출하는 진정한 출애굽을 지향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유월절 만찬의 떡과 잔은 참된 유월절 어린 양인 고난 받는 예수의 죽음의 살과 피를 의미한다. 이를 가시적인 드라마로 연출한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유월절 만찬"이고, "십자가-유월절 만찬" 드라마에 대한 설명이 "떡의 말씀"과 "잔의 말씀"이다.
  유대인들의 출애굽-유월절에서는 유월절 준비를 위해 잡은 양의 고기를 먹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유월절 만찬은 하루 일찍 거행된 것이기에 고기 대신 빵으로 대치되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빵을 유월절 어린 양이라 부르지 않고 "내 몸"이라 하여 예수님의 몸과 일치된 것으로 설명하셨다(27:17). 이는 만찬이 끝나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릴 때가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준비하는 양을 잡을 때와 같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몸이라 믿고 먹은 떡은 유월절 어린 양이 희생당하는 시간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 자신을 의미한 것이다.  
  잔의 말씀은 빵의 말씀을 확실하게 한다. 주님께서는 잔의 포도주를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 설명하셨다(26:28). 여기의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흘리는 피"는 유월절 양의 피를 연상시키는 것으로 사 53:10을 반영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죄사함을 받기 위해 자기 목숨을 주는 것"은 사 53:12을 반영한다. 또한 "언약의 피"는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탄생시키는 출 24:8을 반영한다. 이 모든 말씀들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두 차원에서 정의내려준다. 그것은 예수의 죽음은 새 언약을 제정하여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을 탄생시키는 것으로, 특히 많은 사람들의 죄를 사하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피의 희생으로 실행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잔의 말씀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희생의 피" 주제이다. 이 피는 새 언약 백성의 탄생과 죄 사함 모두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모티브이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언약의 피로 탄생하고, 하나님의 백성의 죄는 희생 양의 피로 사해져 하나님의 백성의 지위를 유지했다. 주님께서는 이제는 예수의 십자가-유월절로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의 피가 언약의 피가 되었고 죄를 사하는 속죄의 피가 되었다 선언하신 것이다. 그래서 동물의 피로 맺은 옛 언약과 옛 이스라엘, 그리고 옛 속죄는 모두 파기되고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 언약과 속죄로 세워지는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마태가 그려준 예수님의 십자가-유월절은 예수님의 예언대로(26:1-2) 주도면밀하게 진행된 예수님의 작품이다. 이 단락에서 사용된 모든 주제들이 예수님의 유월절을 십자가-유월절로 완성하기 위해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십자가-유월절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주제들이 예수님의 주도로 가능한 상황으로 바뀐다. 자칫 십자가-유월절을 실패로 만들 수 있는 주제들도 알고보니 구약 말씀을 성취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유월절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를 형벌이 아니라 진정한 출애굽으로 만드셨다. 

  예수님의 십자가-유월절은 예수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서 새 언약이 맺어져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탄생하는 근거를 완성한 일이다. 새 백성이 탄생했으므로 새 왕이 언급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서술 방식일 것이다. 십자가-유월절을 통해서 태어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릴 새로운 왕은 누군가? 그가 마태복음 26-28장의 마지막 단락에 소개된다. 부활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종말론적인 심판자요 구원자이신 예수시다. 이분이 평행법의 마지막 단락에 십자가-유월절의 예수와 대조되는 자리에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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