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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바울서신

디모데전서 2장 구조분석 어떻게 할 수 있는가?(1)

by 예다준 2022. 9. 20.

디모데전서 2장 구조 분석 어떻게 할 수 있는가?(1)

 

 

 

   필자는 두 번 연재한 "디모데전서 구조 분석 어떻게 할 수 있는가?"라는 글에서 디모데전서의 전체 구조를 아래와 같이 제시했다.

인사(1:1-2) 
A. 다른 교훈, 구원과 선한 싸움, 경건(1:3-2:15)
   B. 직분자의 자격(3:1-13)
     C. 경건의 비밀(3:14-16)
       X. 성령의 경고 :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4:1-5)
     C'. 선한 일군과 경건의 연습(4:6-16)
   B'. 성도들을 대하는 원리(5:1-6:2)
 A'. 다른 교훈, 구원과 선한 싸움, 경건(6:3-19)
끝맺음과 축북(6:20-21)

 

디모데전서 구조 분석 어떻게 할 수 있는가?(2)

디모데전서 구조 분석 어떻게 할 수 있는가?(2) 5. 분석이 안된 본문은 앞에서 언급된 원리대로 다시 분석을 시도해본다. 1) 우선 주제가 눈에 쉽게 보여 단락 구분이 분명해 보이는 부분을 구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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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글은 디모데전서의 문학적 구조의 특성과 전체 구조를 찾는 방법에 집중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디모데전서의 구조를 제시하는 데에 가장 큰 어려움 거리인 2장의 구조 분석에 대해서 상세하게 언급하지 않고 그저 구조만 제시했다. 그 제안에서 디모데전서 2장은 "A. 다른 교훈, 구원과 선한 싸움, 경건"안에서 교차대조법으로 대조되는 짝인 6:3-19(A'. 다른 교훈, 구원과 선한 싸움, 경건)과 어울려 아래와 같은 동의적 평행법을 만든다 설명했다. 

A. 다른 교훈, 구원과 선한 싸움, 경건(1:3-2:15)
   a. 다른 교훈과 경계의 목적, 다른 교훈을 따르는 자의 특징(1:3-11)
      b.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그리스도의 은혜(1:12-17)
   a'. 선한 싸움 명령(믿음과 착한 양심)과 실패자들(1:18-20)
      b'.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한 권면(2:1-15)

A'. 다른 교훈, 구원과 선한 싸움, 경건(6:3-19)
  a''. 다른 교훈과 다른 교훈을 따름의 결과(6:3-5)
     b''. 자족하는 경건과 돈을 사랑함에서의 구원(6:6-10)
  a'''. 믿음의 선한 싸움 명령(6:11-21)
     b'''. 부자가 생명을 얻기 위한 권면 (6:17-19)


  그런데 위 구조를 결정하는데에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은 단락인 A의 b'를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체 구조에서는 간단하게 한 줄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한 권면"으로 표현되었지만 그렇게 결정하기 위해 참고한 논문의 숫자는 물론 들인 공이 보통이 아니었다. 이에는 본문을 이해하는 데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점들의 난이도가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1) 1장과 2장 단절된 문맥인가 연속적인 문맥인가? 그리고 2장의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 원하는 기도"(2:1-8)와 "여자들의 마땅한 행실"(2:9-15) 단절된 주제인가 연속적인 주제인가?
  디모데전서 1장과 2장을 연이어 읽으면 가장 먼저 만나는 문제가 문맥과 주제가 단절되는 엉뚱한 단락의 빈번한 삽입과 접속 부사와 문맥의 흐름이 잘맞지 않아 이해에 방해가 되는 것이다.

  1:12-17의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그리스도의 은혜" 단락은 내용 이해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이 부분이 믿음의 선한 싸움 말씀 가운데에 위치한 이유를 묻게 되면 난해한 단락으로 바뀐다. 앞 단락인 1:3-11과 바로 이어지는 다음 단락인 1:18-20절은 분명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주제로 한 말씀이다. 그런데 바울은 갑자기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해, 특히 이전에 그리스도의 원수로 지냈던 바울 자신의 구원과 은혜 받음을 간증하고 찬양한 단락이 삽입된 것은 엉뚱하다를 넘어 황당하다 생각될 정도로 이해가 쉽지 않다. 

  황당한 상황은 2장에 가서 접입가경인데, 2:1은 "그러므로"(운, οὖν)라는 접속사를 필두로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중보기도", 특히 "로마제국을 위한 중보기도"와 "여성들의 사역"에 대한 문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성의 해산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에 대한 문제가 언급된다. 
  "그러므로"는 앞의 내용이 뒤의 내용의 이유나 원인, 근거가 될 때 쓰는 접속 부사이다. 바울이 1장을 끝맺고 2장을 시작하면서 "그러므로"를 사용한 것은 1장이 2장의 원인이나 근거가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러므로"는 1장의 핵심 주제인 "믿음의 선한 싸움"이 2장에서도 중심 문맥일 것이라 기대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기대로 2장을 보면 바울의 논지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추측하기 곤란해진다. 이는 바울이 2장에서 정작 말한 "모든 사람들과 위정자들을 위한 중보기도"와 "여성의 사역"에 대한 문제는 믿음의 선한 싸움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1의 "그러므로"(운, οὖν)는 분명히 바울의 마음에는 1장과 2장이 연결된 문맥임을 보여주는 성경 본문 상의 증거이다(물론 바울이 정상적인 논리를 가진 사람이라는 전제하에서). 그렇다면 2장도 믿음의 선한 싸움 주제를 이어받은 내용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2장을 교회의 문제나 공중예배에 대한 주제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목회 방법을 조언해주는 것이라 본다. 이는 1장의 믿음의 선한 싸움 주제는 끝났고 새로운 주제를 바울이 말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의 증거와 이에 대한 해석의 괴리는 성경 본문에 충실하고자 하는 해석자가 충실의 강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본문을 더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를 만든다. 

 
  또 2:5-7에 1:11-14절에 나왔던 "바울의 구원과 부르심"에 대한 말씀이 또 나온다. 이것은 1장의 문맥이 그대로 반복된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성경 본문 상의 또 다른 증거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9의 여성들에 대한 가르침은 앞의 2:1-8에 나오는 모든 사람과 위정자들을 위한 중보기도와 "같이"(호사우토스, ὡσαύτως)라는 접속 부사를 사용해서 이어졌다. 이것은 여성들에 대한 권면이 새로운 주제가 아니라 앞의 주제와 연동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정작 바울은 교회와 남성들에게는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지만 여성들에게는 기도가 아니라 행실에 대한 가르침을 주어 문맥의 흐름이 "같이"(호사우토스, ὡσαύτως)라는 접속 부사가 매끄럽게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접속사들을 사용하는 방법을 잘 몰랐고, 주제를 돌출적으로 반복하고 진행해서 앞 주제의 문맥을 끊어버리는 일을 했다고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과연 그럴까? 이 결론을 역으로 뒤집어 생각하면 어떨까? 동일한 문맥을 끊어버리는 것 같이 보이는 주제들의 돌발적인 반복은 1장의 문맥이 계속해서 2장 끝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접속 부사와 문맥의 불일치는 바울의 어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이해하는 해석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결국 우리는 사도 바울을 비상식적인 논리 구조를 가지고 예측이 무시되는 이상한 표현을 하는 사람으로 보든지 아니면 우리의 해석 방법이 잘못된 것으로 보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만든다. 

  2) 특별히 디모데전서 2장에는 디모데전서의 4대 난제가 몰려있다. 4대 난제는 이것들이다.

  중보기도의 성격(2:1-2)
  모든 사람의 구원의 의미(2:4, 6)
  여성 사역 금지 여부(2:11-12)
  여성의 해산과 구원의 연관성(2:15)


  이것들은 신학적인 이슈지만 이를 넘어 여성의 인권과 연관된 문제로 교단들과 신학자들 사이에서 첨예하게 대립되는 교회 정치적 문제가 되거나(여성 사역 금지 여부), 기독교 교리의 근간을 흔드는 구원에 대한 문제(모든 사람의 구원, 여성의 해산과 구원)가 되어 아직도 해결점을 찾지못한 골칫거리로 남아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면 성경 해석의 문제이다. "중보 기도"는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과 연관된 것이다. "여성 사역 여부" 문제도 성경 본문을 보면 "여성의 해산과 구원"과 연결되어 있다. 또 2:9의 바울의 표현으로 보면 "여성 사역" 문제를 "중보 기도" 주제와 같이 보아야하기 때문에 두 주제도 서로 연결된 것이다. 결국 서로 얽히고설킨 4개의 난제들의 관계는 하나가 풀리지 않으면 다른 것도 풀리지 않아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알 수 없는 문제가 되어 버린다. 이것은 바울이 디모데전서 1-2장을 통해 교훈하는 바를 교회가 알아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난제들이 성경 해석의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성경의 구조 분석에도 문제가 생긴다. 성경의 구조 분석의 가장 기초 단계가 단락 나누기이고 단락들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 대조되는 짝을 만드는 것인데 성경 본문 해석에 문제가 있으므로 단락 나누기가 첫 걸음 부터 안갯속에 파묻히는 위기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상의 이유들은 성경 해석에 대한 개인 능력 부족과 합해서 2장을 분석하는데에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이다. 이 어려움들은 성경 저자 중심의 문체적 구조적 해석법의 가치를 보여줄 기회가 될 수 있다. 전통적인 성경 해석법은 "문법적-신학적-역사적 해석" 중심으로 성경 본문의 단어, 구절의 문법적, 역사적, 신학적 의미를 찾는 것에 중점을 둔 해석법이다. 그래서 본 연구가 강조하는 문체적 구조적 해석에는 미흡하다. 그러면 문체적 구조적 해석으로 유명한 난해 성경인 디모데전서 2장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면 어떤 가치를 발휘할지 궁금해진다. 이런 이유로 디모데전서 2장을 문체적 구조적 해석을 시도하여 성경 본문 이해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살펴본다.

 

1. 디모데전서 2장 분석

 

  1-1. 단락 나누기와 이해

  가장 기본적인 단계인 단락 나누기를 실시해본다. 디모데전서 2장의 단락 나누기는 아주 쉽다. 아마도 이견이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될 만큼 단락이 분명하게 구분된다. 먼저 첫 번째 단락인 1-8절을 본다.

  1-1-1. 2:1-8 단락 나누기와 표현과 구조의 특성 파악
  1) 디모데전서 2장의 단락은 1절의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라는 표현과 9절의 "또 이와 같이~"라는 표현으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절과 8절은 기도에 대해 교훈하는 것으로 한 단락이다. 바울은 단락의 처음과 마지막에 "기도" 주제를 표시해 주었다. 이는 마치 inclusio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2:1-8이 "기도" 주제로 한 단락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이러한 문형은 9절과 15절에도 비슷하다. 9절은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라고 시작해서 15절은 "그러나 여자들이~"로 맺어 inclusio와 같은 구조를 만들었다. 이로서 2:1-15절은 1-8절과 9-15절로 나누는 것이 바울의 의도에 맞는 단락 나눔이라 판단된다.

  2) 여기에서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2:1-8과 2:9-15이 단절된 문맥이나 주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1절의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라는 표현과 9절의 "또 이와 같이~"라는 표현을 근거로 한 판단이다. 
  9절의 "또 이와 같이"는 9-15절 단락이 앞의 1-8절 단락과 전혀 무관한 단락이 아님을 증명해주는 증거이다. 더군다나 원문의 순서는 "이와 같이 그리고"(호사우토스 카이, ὡσαύτως καὶ)로 한글 번역 표현과 반대이다. 이 표현은 "앞의 문맥이나 주제와 같이 또 하나를 언급하면"으로 이해되어 "또 이와 같이" 보다 더 앞 단락과의 연계성을 명확하게 표현해준다.  


  3) 그러면 1-8절을 살펴 본다. 
  2:1-2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종용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2:3-7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를 신학적으로 설명한 것인데, 핵심은 세 가지로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소원이며(2:4),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의 희생이 실행되었고(2:6), 그리고 바울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임명된 사실(2:7)이 근거로 제시되어 있다. 그런 후 바울은 "그러므로"라는 접속 부사를 사용해서 남성들이 기도하기를 권면했다.
  이러한 문맥은 본문을 세 부분으로 보도록 만들어준다.   

  1-2절 :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
  3-6절 :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의 이유
  7절 : 남성들의 기도

  위의 구분을 히브리적 평행법으로 도식화하면 2:1-7의 미시적인 구조가 된다. 
  1-2절과 7절은 기도로 상응한다. 그래서 평행법의 짝이 될 수 있다. 3-6절은 짝이 될 수 있는 다른 단락이 없다. 그러면 1-7절은 중앙이 하나의 단락으로 집중되는 교차대조법이 만들어진다.

a.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한 기도(2:1-2a)
  x.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한 기도의 이유(2:2b-7)
     x1.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 원하는 하나님
     x2. 모든 사람의 구원의 속전인 예수 그리스도
     x3.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세움 받은 바울
a'. 남자들의 분노와 다툼 없는 거룩한 기도(2:8)


  4) 여기에서 1-8절 분석을 마치는 것은 너무 빠른 판단이다. 성경 주석가들이 많이 지적하는 것으로 a와 a'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로 주제는 같지만 바울이 교훈하는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a는 기도의 대상(1절 : 모든 사람, 2절 :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과 기도의 방법(1절 :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 그리고 기도하는 이유(1절 :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를 알려주는데, a'에는 그런 언급은 없고 남성들이 기도할 때에 가져야할 태도에 대한 것만 언급되었데(2:8), 그것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로 표현되어 있다.

  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주목할 것은 남성들이 기도를 하는 것에 대해 무엇 때문에 바울은 "분노와 다툼이 없이"를 언급했을까 하는 것이다. 이 표현에는 이 표현을 사용해야만 하는 특별한 정황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 일반적인 중보기도 요청에 이런 문구를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1-1-2. 2:9-15 단락 나누기와 표현과 구조의 특성 파악
  1) 2:9-15은 단락이 어떻게 나누어지는가? 
  2:9-10절은 여성들의 행실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한 단락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11절을 보면 약간 헷갈린다.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라는 명령은 이어지는 12절의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로 볼 때 남자를 가르치는 일로 발생한 문제인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것을 9-10절의 여성의 행실의 한 부분으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구분해서 다른 단락으로 보아야 하는지 망설여진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바울이 "여성들의 행실"에 대한 언급과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움"에 대한 언급을 구분했는지 그렇지 않고 여성의 행실에 대해 연이어 말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본문을 보면, 또 하나의 망설여지는 문제가 보인다. 그것은 13-15절이다. 이 부분은 여성이 남성을 가르치는 것을 금하는 이유를 성경을 들어 논증한 부분인데 15절은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렵다. 더군다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문구는 구원에 대한 설명인지? 그렇다면 여성들은 해산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지? 이런 구원에 대한 설명은 듣보 보지도 못한 망측한 설명으로 보여 순식간에 신학적 함정에 빠진 듯한 난감함이 생긴다. 

  그래서 대부분은 안전하게 본문을 두 단락으로 나누게 된다. 

  2:9-10 :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성들의 행실
  2:11-15 : 여성이 남성을 가르치는 문제에 대한 교훈

  2) 이제 바울의 표현을 가지고 본문의 특징을 살펴본다. 

  이 작업은 앞에서 실시한 단락 구분이 타당한지 아닌지를 성경 본문의 표현으로 확인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작업을 하다 보면 단어나 문구, 구절의 의미를 파악하는 본문 해석 작업이 수행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이것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의 구조와 문체적 특징을 살펴보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기에 단어나 문구, 구절 해석은 제한적으로 수행한다.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이 단락과 앞의 2:1-8 단락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2:1-8과 2:9-15절이 서로 연관된 단락임을 확인했다. 이는 2:9의 "또 이와 같이"라는 접속 부사를 기억하고 본문을 이해한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2:9절 이하에 2:1-8과 같이 모든 사람을 위한 중보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주지 않고, 여성에 대한 두 가지 교훈을 주었다. "이와 같이"라는 접속 부사를 기억하면 당연히 여성들의 중보기도가 언급되어야 한다. 이 예상은 1-7절 까지 모든 사람을 위한 중보 기도의 일반적 원리를 말하고, 8절에 남성들의 기도를 말한 후, 9-15절에 여성들의 중보 기도로 이어지는 흐름을 누구나 예상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왜 여성들에게는 중보 기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는지 궁금해진다. 엉뚱하게 행실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인다. 게다가 남성을 가르치는 문제에 대해 엄히 경계하는 내용은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을 넘어 문제가 있었다 판단하게 된다. 
  2:1-7에서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기도를 가르치고, 2:8에서 남성들의 기도를 가르친 바울이 2:9에서 "또 이와 같이"라 말한 후 여성들에 대한 두 가지 교훈을 준 것은 분명히 세 단락이 문맥 흐름 상 하나의 맥락 안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에게 주는 교훈은 내용이 "중보 기도"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본문의 구조와 문체, 표현을 종합적으로 관찰해서 얻은 결론이다.

  3) 2:9-15 단락의 구분과 이해를 위해 해석자의 시야를 새롭게 해주는 도구가 있다. 그것은 성경 원문에 대한 것이다. 언어에는 쥐약인 필자에게는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분석을 시도했다.
  연관된 논문들을 살펴본 결과를 한 마디로 간단하게 말하면 마지막 절인 15절의 해석은 원문 직역을 보아야 하고, 다른 구절들은 주어의 수와 변화를 유심히 보아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주어와 수와 변화를 아래 표로 본다.  

  2: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2:11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2:12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2:15a "그러나 (그녀의)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2:15b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사도 바울은 여성들에게 준 교훈에서 주어를 달리 사용했다. 특히 여성의 남성을 가르치는 문제에 사용된 주어(11, 12, 15a)는 모두 단수이다. 하지만 여성의 행실에 대한 교훈에 나오는 주어(9, 15b)는 모두 복수이다. 이것은 남성을 가르치는 일로 경고를 받은 여성과 행실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여성이 다른 인물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여성의 행실을 교훈받는 자들은 에베소 교회의 일반 여성들이지만 남성을 가르치는 일로 경고를 받은 여성은 특정 인물 한 사람이라 생각된다. 이 발견은 디모데전서 2장의 구조를 해석하는 데에 중요한 하나의 가이드라인을 안내받은 것과 같다.

  4) 이번은 원문을 분석하는 것으로 앞의 것 보다 더 어렵다. 이는 마지막 절 15절의 번역에 대한 것으로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알아듣지 못할 문제 해결에 실낱같은 도움을 준다. 
  우리말 성경의 15절은 주문장과 부문장이 바뀌어 번역되었다. 원문은 우리말 번역과 순서가 반대로 직역하면 이렇다. 

  우리말 번역 :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원문 직역 : "그러나 (그녀의, 단수)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미래 직설법 수동태)만일 여자들이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15절은 수동형인 주문장(파란색)과 능동형인 부문장(빨간색)으로 되어 있다. 주문장의 주어는 단수이며, 부문장(조건절)의 주어는 복수로서 주어가 서로 다르다. 그런데 우리말 성경에서는 주문장과 부문장의 주어가 둘 다 복수("여자들")인 것처럼 모호하게 표현되어있어 구분이 쉽지 않다. 헬라어 본문에는 주문장이 먼저 나오고 부문장이 나중에 나오는데 우리말 성경에는 부문장(조건절)이 먼저 나오고 주문장이 나중에 나오면서 "그녀의"라는 주어를 생략했기 때문에 15절의 주어가 복수로 보이게 표현된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2:13-14에 나오는 하와에 대한 설명이 누구에게 적용되는 것인지 분별할 수 있도록 해준다. 바울이 하와를 언급한 것은 여성이 남성을 가르치는 것을 금하는 경고에 성경적 권위를 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까 13-14절의 꾀임을 받아 죄를 지은 하와는 11-12절의 남성을 가르침으로 경고를 받은 어떤 여성과 비교되는 말씀이다. 이런 이유로 두 단락의 주어가 단수로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15a의 "그러나 (그녀의, 단수)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의 주인공은 일차적으로 하와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하와를 말하고 싶어서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일으킨 한 여인을 구원으로 권면하기 위해서 하와를 언급한 것이므로 의미상으로 볼 때 하와는 한 여인을 지칭하게 된다.

  이것은 2:19-15을 구조 분석을 하는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힌트를 준다. 바울의 교훈은 하나가 아니라 두 대상을 향해 주어진 두 개라는 사실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2:9-15을 다음과 같이 분해할 수 있다.

1.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성들의 마땅한 행실(2:9-10)(a-x-a' 형태의 교차대조법이다)
  9a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9b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2. 문제를 일으킨 한 여성의 구원을 위한 바울의 금지 명령(2:11-12)(a-x-a' 형태의 교차대조법이다)
    11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12a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12b 오직 종용할지니라

  2'. 바울의 금지 명령의 이유 - 죄를 범한 하와의 구원받음 예(2:13-15a)
    13 "이는(왜냐하면, γὰρ)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15a 그러나 (그녀는)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1'.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성들의 구원(2:15b)
  15b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1과 1'는 에베소 교회 여자 성도들 모두를 향한 가르침으로 대조되는 짝이다. 1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성에 대한 일반적인 모습을 그린 것이라면 1'는 대조되는 1을 보충하는 가르침인데, 15절의 주문장이 구원과 관계된 내용이므로 1'의 가르침은 구원론적인 교훈으로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1'는 바울이 가르침을 금지한 한 여자에게도 해당되는 조건문이다. 이는 1'가 바울이 금지 명령을 내린 문제의 한 여인에 대한 가르침인 15절의 부문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1'는 일반 여자 성도들은 물론 문제를 일으킨 한 여인에게도 적용되는 이중적인 조건문이 되는 것이다.

  2는 문제를 일으킨 한 여인에 대한 교훈인데, 1과 교차대조법으로 모양이 같다. 특히 교차대조법의 중앙이 금지에 대한 교훈으로 같다. 이는 바울의 입장에서는 에베소 교회 여성도들이 과도하게 치장하고 멋을 내는 모습과 한 여인이 남자를 가르쳐서 주관하려 하는 모습은 동일하게 부정적으로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는 "왜냐하면"(가르, γὰρ)로 시작한다. 이 접속사로 2'는 어떤 여인에게 가르침 금지 명령을 내린 이유를 설명하는 구절로 이해할 수 있다. 바울이 문제를 일으킨 여인에게 금지 명명을 내린 이유를 담은 하와의 범죄에 대한 언급(2:13-15)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먼저는 하와의 범죄에 대한 설명으로 13-14절이고, 두 번째는 하와의 범죄의 결과인 15a 절이다. 문제는 두 부분 중 어느 부분에 해석의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내용 이해가 완전히 틀려진다. 

  한 가지 제한을 한다면, 1과 2가 대상만 다르고 교훈의 구조가 같고 중심 메세지도 같은 것으로 보아, 1'와 2'도 같은 결론으로 볼 수 있다 생각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구조를 통해서 추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2'의 두 단락 중 1'와 결론적으로 어울리는 것은 15a이다. 이는 바울은 하와(문제를 일으킨 한 여인)의 범죄 보다 하와(문제를 일으킨 한 여인)의 구원에 초점을 두고 교훈했다는 의미가 된다. 

 

  위 해석은 전통적인 해석과 다른 상이점들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먼저, 바울이 범죄한 여인에게 가르침 금지 명령을 준 이유를 다르게 보게 해준다. 전통적인 해석은 바울은 교회에 문제를 일으킨 여인의 일(사역)을 금지시키기 위해 가르침을 준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 해석은 바울의 금지 명령은 여인의 구원을 위해 주어진 것으로 본다. 

  두 번째 바울이 하와의 범죄를 언급한 이유를 다르게 보게 해준다. 전통적인 해석은 13절에 강조점을 둔다. 하와가 창조 질서를 어긴 것과 같은 잘못을 이 여인이 했다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해석은 15a에 강조점을 둔다. 범죄를 저지른 하와가 비록 잘못을 저질렀어도 해산의 과정(2:15a "그 해산을 통해서")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과 같이 바울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일반 여성들과 동일하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설득한 것이라 보는 것이다.

  더 이상 깊은 분석은 보다 전문적인 성경 해석의 업무이다. 바울이 가르침 중지를 명한 이 여인에 대한 것도마찬가지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문장과 단어 등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물론 역사적 신학적 해석을 해야만 보다 명백하게 추론할 수 있는 사항이다. 그러므로 구조 분석으로 그 여인을 추론하는 것은 지나친 시도이다. 요즘 학자들은 이 여인을 에베소 교회의 전체 여인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지 않으려 한다. 이 여인에겐 바울에게 경고를 받아야 하는 이 여인만의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이라 해석하고 2:11의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는 바울의 금지 명령은 이 여인에게 국한된 명령으로 보는 경향이 짙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5) 그렇다면 우리는 2:9-15에 대한 분석 결과들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는가?
  가장 먼저, 행실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여성들과 남자를 가르침으로 경고를 받은 여성을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하와와 같이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 사람은 일반 여성도들이 아니라 하와로 비유되는 남자를 가르침으로 경고를 받은 특정인 한 여성이다. 이와 달리 일반 여성들은 바울이 부문장에 기록한대로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으로 구원을 받는다. 디모데전서는 물론 바울 서신을 보면 믿음, 사랑, 거룩함은 서로 동의어와 같이 사용된다. 그러므로 바울이 가르친 일반 여성들의 구원에 대한 가르침은 그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구원론과 같은 것이다.

  아마도 바울은 죄를 범한 하와가 해산이라는 특별한 고통의 과정(2:15a는 "해산을 통해서"가 아니라 특정 해산을 지적하는 "그 해산을 통해서"로 나온다.)을 거쳐서 회복된 것과 같이, 남자를 가르친 것으로 문제를 일으킨(죄를 범한) 여성의 구원을 위해 그녀만의 "그 해산의 과정"(2:11의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을 통과하라(2:15의 "출산을 통하여"(διὰ τῆς τεκνογονίας)) 명령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문제를 일으켜 금지 명령을 받은 어떤 여인이 일반 여성들이 믿음, 사랑, 거룩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과 같은 것(즉 죄를 회개하고 믿음에 바로 서서 믿음, 사랑, 거룩함을 행하는 것)이라 바울은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로 에베소 교회 여성들과 문제를 일으킨 한 여성을 바울이 구분해서 언급하는 것은 2:9-15의 구조적 특성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것은 바울은 일반 여성들에게 준 교훈을 둘로 나누고, 그 가운데에 특별히 경고를 해야만 하는 한 여성에 대한 교훈을 삽입한 모양을 만든 것이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논리와 표현 방법은 이상한 또는 쓸데없는 것이다. 바울이 현대인이었다면 a와 a'를 말하고, 그 다음에 b와 b'를 이야기했을 것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에게 가장 적절한 논리와 표현방법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1세기 그레코-로만 문화안에서 자신들에게 가장 적절한 표현방법인 아래와 같은 구조의 평행법을 만들기 위해 a와 a'를 쪼개고 b와 b'를 집어넣는 배치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a. "여자들"의 하나님을 공경하는 행실(2:9-10)
  b.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2:11-12)
  b'. "여자"가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는 삶의 성경적 이유(2:13-14, 15b)
a'. "여자들"의 믿음과 사랑과 거룩한 행실의 결과 : 구원(2:15a)
 
  6) 2:9-15에 대한 해석적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면 앞에서 계속해서 거론한 2:1-8과 2:9-15의 연관관계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게 된다. 
  바울의 표현으로 보면, 특히 9절의 "또 이와 같이", 두 단락은 서로 연관된 단락인데 어째서 바울은 전혀 다른 내용을 교훈했는가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2:9-15 단락에 대한 힌트로 2:1-15절이 "중보기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구원"이라는 주제로 통합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2:2은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을 중심으로 특히 로마제국을 위한 중보 기도가 권면된다. 이와 같이 여성들에게 주어진 가르침인 2:9-15에는 "일반 여성의 구원"을 위한 가르침과 "특별한 문제를 일으킨 한 여성의 구원"을 위한 가르침이 있다. 바울의 논지의 중심은 중보 기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구원(특히 문제를 일으켜 교회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실재적, 잠재적 대적자)에 있기때문에 로마 제국을 위한 중보기도와 여성들의 구원을 위한 가르침을 "이와 같이"로 연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남자들에게만 중보 기도를 요청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혹자는 2:8의 남성들의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는 것"이 이 여성의 문제와 연관된 것으로 보기에 "분노와 다툼이 없이"라는 특이한 설명이 부가된 것이라 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은 남성들의 분노와 다툼의 대상을 로마로 본다. 확정할 수 없지만 얼마든지 가능한 추측이라 생각한다. 성경 본문을 보면 남성들은 구원을 위해 기도가 필요한 대적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대적자들의 구원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해야하는 정상적인 교인이었다. 본문의 구조를 보면 남성들의 기도는 로마제국의 구원과 연결된 것이기에 아마도 남성들은 로마 제국에 대해 분노와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2장의 논리는 "교회의 문제가 되는 대상(대적자)" + "문제가 되는 대상의 구원을 위한 교회의 대응"이라는 구조를 근간으로, 그 사이에 "또 이와 같이"가 연결된 것이다. 

  대적자2 : 로마의 구원(2:2)
  + 분노와 다툼이 없는 남성들의 중보기도(2:8)

  "또 이와 같이"(2:9)

  대적자3 : 한 여성의 구원(2:11-12)
  + 믿음, 사랑, 거룩한 여성들의 행실(2:9, 15b)
  (* 대적자1은 1장에 나오는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이다.) 

  이것이 디모데전서 2장 전체를 주도하는 바울의 논리적인 기본 구도로 보인다. 이 구도는 전통적인 해석과 다르다. 전통적인 해석은 2장을 목회에 조언을 주는 성경으로 본다. 하지만 이 해석은 2장을 1장에 이어진 에베소 교회의 대적자들의 구원을 위한 교회의 대응으로 본다. 이 이해는 목회에 대한 조언을 포함하지만 그 이상의 차원을 가진 것이다.
  디모데전서 2장에는 두 종류의 대적자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는 가상적 대적자로 로마 정부이고, 두 번째는 실재적 대적자로 남성들을 가르치는 일로 문제를 만든 한 여성이다. 이들의 구원을 최종 목적으로 바울은 이들을 어떻게 대할지 남성과 여성에게 두 개의 구체적인 지침을 준 것이 2장의 내용이다. 
  역사를 회고해보면 로마는 교회를 핍박하는 최고의 대적자가 된다. 바울은 이를 미리 예비하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특별히 남성들을 가르치는 일로 문제를 일으킨 한 여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여성이 누군지는 알 수 없다. 가르쳤다는 말로 1장에 나오는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유대적 대적자와 같은 부류로 보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역사적, 신학적 해석이 필요하다.  


  7)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앞에서 1장과 2장이 "그러므로"로 연결되었는데 정작 다루어진 주제가 "믿음의 선한 싸움"(1장)과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한 대응"(2장)으로 다른가를 문제시했다. 이 문제는 2장의 논리인 "교회의 문제가 되는 대상(대적자)" + "문제가 되는 대상의 구원을 위한 교회의 대응" 구조가 말끔하게 해결해 줄 수 있다. 그 이유는 1장의 구조도 동일한 구조로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는 대적자에 대한 대응 방법이 믿음의 선한 싸움으로 제시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래 도표와 같이 1장의 "믿음의 선한 싸움"과 2장의 "구원을 위한 기도와 착한 행실"은 모두 바울이 제시해준 대적자들에 대한 대응책으로 같은 것이다. 

디모데전서 1-2장의 "교회의 문제가 되는 대상(대적자)+대적자의 구원을 위한 교회의 대응"구조


  결론적으로 말하면, 바울은 디모데전서 1-2장에서 "교회의 문제가 되는 대상(대적자) + 대적자의 구원을 위한 교회의 대응" 구조라는 모티브를 다양한 모티프들("다른 교훈", "믿음의 선한 싸움", "바울의 간증", "로마 정부를 위한 기도" ... "남성을 가르침으로 문제를 만든 한 여성에 대한 경고", "출산으로 구원을 얻음")을 사용해서 동의적 평행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전통적인 해석이 1장과 2장의 주제를 다른 것으로 인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울이 1장과 2장에 구축해 놓은 "교회의 문제가 되는 대상(대적자)" + "문제가 되는 대상의 구원을 위한 교회의 대응" 구조를 모르고 단지 현대인에게 익숙한(그래서 저절로 작동하는) 순차적 인과적 구조로 성경 본문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표현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주제로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바울의 머릿속에는 위 구조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보기에 이상한 표현 방법들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그것들이 하나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다양한 표현으로 그의 논지를 더 확고하고 충실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1-2. 디모데전서 2장의 구조

  앞의 연구를 통해서 디모데전서 2장의 문학적 구조를 알게 되었다. 디모데전서 2장은 전체 구조에서 "A. 다른 교훈, 구원과 선한 싸움, 경건(1:3-2:15)"에 속한 b'라는 하부 단락이다.
   "A.다른 교훈, 구원과 선한 싸움, 경건(1:3-2:15)"은 디모데전서 1-2장을 포괄하는데, 그 특징이 동의적 평행법으로 두 주제가 번갈아 반복되는 모양을 가진 것이다.

A. 다른 교훈, 구원과 선한 싸움, 경건(1:3-2:15)
   a. 다른 교훈과 경계의 목적, 다른 교훈을 따르는 자의 특징(1:3-11)
      b.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그리스도의 은혜(1:12-17)
   a'. 선한 싸움 명령(믿음과 착한 양심)과 실패자들(1:18-20)
      b'.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한 권면(2:1-15)

  A-b'에는 두 개의 하부 단락(아래의 빨간색 a와 b)이 있고, 각 하부 단락은 각각 동의적 평행법(아래의 파란색)을 하부 문학적 구조로 가지고 있다. 

  b'.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한 권면(2:1-15) 
    a. 모든 사람(특히 로마 제국)이 구원받기 원하는 기도(2:1-8)
      a.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한 기도(2:1-2a)
        b.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 원하는 하나님과 모든 사람의 구원의 속전인 예수 그리스도(2:2b-6)
        b'.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세움 받은 바울(2:7)
     a'. 남자들의 분노와 다툼 없는 거룩한 기도(2:8)

    b. 여자들(특히 문제를 일으킨 한 여인)의 구원을 위한 행실(2:9-15)
      a. "여자들"의 하나님을 공경하는 행실(2:9-10)
        b.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2:11-12)
        b'. "여자"가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는 삶의 성경적 이유(2:13-14, 15b)
      a'. "여자들"의 믿음과 사랑과 거룩한 행실의 결과 : 구원(2:15a)

  이 모양에서 1장과 2장의 연관관계를 해석할 수 있다. 이제 이것을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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