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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바울서신

디모데전서 1장 상세 구조 분석 어떻게 할 수 있는가?(1)

by 예다준 2022. 9. 24.

디모데전서 1장 상세 구조 분석 어떻게 할 수 있는가?(1)

 

 

 

  우리는 흔히 "숲도 보고 나무도 보라" 말한다. 성경을 문학적 구조 중심으로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무보다는 숲에 치우치는 경향이 짙어진다. 그래서 성경의 상세한 부분에 대한 관찰과 묵상이 빠지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나무 하나하나를 보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이를 구조 분석에서는 "상세 구조 분석"(Detailed Structural Analysis)이라는 방법으로 실행할 수 있다. 필자가 주로 소개하는 구조 분석은 전체 평행법 위주로 하기 때문에 십수 절을 가진 성경도 몇 줄로  요약되는 경우가 많다. 이 방법은 특정 구절이나 단락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래서 "상세 구조 분석"이 필요하다. 

  상세 구조 분석은 성경 구절들을 세밀하게 분석하기 위해 성경 본문 자체를 히브리적 평행법으로 도식화하는 작업이다. 종종 학자들의 논문을 보면 이런 식으로 구조 분석을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 방법은 구절, 문장, 단어를 하나하나 분석하는 기존의 주석 방법처럼 절별로 문장별로 세밀한 구조적 관찰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하지만 성경 구절 전체를 다루는 것이므로 복잡하고 어렵다. 그런데 하고자 하는 열심이 있고,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어 여기에서는 디모데전서 1장을 "상세 구조 분석"으로 다루어본다.  

 


1. 디모데전서 1장 전체의 상세 구조에 대한 관찰과 분석

  구조 분석을 하는 방법과 팁을 연구하고 알리기 위해서는 전제없이 성경 본문을 분석하는 귀납적 접근 방법이 좋다 생각한다. 하지만 귀납적으로 분석하는 과정과 요령을 설명하는 것은 너무 복잡하고 길어진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상세 구조를 소개하고 해설하는 데에 집중하기 위해 연역적 접근 방법을 사용하겠다. 관찰을 위해 필요하다 생각되는 경우를 위해 성경 원문과 개인적인 번역이 포함되어 있다.
  


  1-1. 디모데전서 1장 전체의 상세 구조

  가장 먼저, 디모데전서 1장 전체의 문학적 상세 구조는 아래와 같이 분석되었다. 

A. 1:3-11 경계 - 바른교훈 vs 다른 교훈,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
a. 
  3a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경계(명)하여"(παραγγέλλω) 

  a) 3b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b) 4a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a') 4b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ἢ οἰκονομίαν θεοῦ τὴν ἐν πίστει)을 이룸보다 
    b') 4c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b. 5 경계(παραγγελία)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a'. 
  a) a] 6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쓸데없는 말(ματαιολογίαν) 안으로 얼굴을 돌린 어떤 사람들(τίς))
         b] 7 율법의 선생(νομοδιδάσκαλοι)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x) 8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
  a')   b'] 9a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율법이 없는 자(ἀνόμοις)와 ... 9b-10a
      a'] 10b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반대하는 다른 어떤 사람들(τίς)이면)를 위함이니

 

  b'. 11a 이("바른 교훈") 교훈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 11b 내게 맡기신 바라


    X. 1:12-17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 -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씀(ὁ λόγος) :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a. 
       a) 12a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b) 12b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c)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x. 
          a)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x) 15a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a') 15b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a'. 
            c') 15b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16a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b') 16b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a') 17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A'. 1:18-20 경계 - 선한 싸움, 믿음과 착한 양심
18a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παραγγελία)로써 명하노니(앞에 놓으니) 
a. 18b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b. 19a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b'. 19b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a'. 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 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

  A-X-A'의 교차대조법이다. 그러나 1장은 2장과 연결되기 때문에 2장을 연결하면 문학적 구조의 모양이 아래와 같이 동의적 평행법으로 바뀐다는 점을 참조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블로그에 실린 글 "디모데전서 2장 구조 분석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참조하라.

A. 1:3-11 경계 - 다른교훈,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
  B. 1:12-17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씀(ὁ λόγος) 
A'. 1:18-20 경계 - 선한 싸움, 믿음과 착한 양심
 B'. 2:1-15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한 권면

 

  1-2. 구조에 대한 관찰과 분석 

  디모데전서 1장은 인사말(1:1-2)을 빼고 세 단락(1:3-11; 12-17; 18-20)으로 나누어진다. A 단락은 "다른 교훈"(3b절)과 "바른 교훈"(11a절)으로 처음과 마지막이 하나로 분류되고, X 단락은 12a절에서 "그리스도 예수께 대한 바울의 감사"와 17절의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찬송으로 단락이 구분된다. 마지막으로 A' 단락은 18b절의 "선한 싸움" 명령과 20절의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의 파선과 징계 받음"으로 한 단락으로 구분된다. 
  이와 같이 디모데전서 1장의 단락 나누기는 특별한 어려움 없이 깔끔하게 완성될 수 있다. 이는 바울의 논지가 분명하고 오늘 우리가 보기에 난해한 부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분의 표현들은 압축적이기 때문에 비록 작은 분량이지만 발견할 수 있는 모티프들이 많다 판단된다. 이제 이것들을 하나하나 찾아본다.

  1) 1:3-11(A)과 1:18-20(A')은 바른 교훈에 대한 경계로 대조 상응하는 구조의 짝이다. A에서 바울은 "바른 교훈"을 "경계하다"(팔랑겔로, παραγγέλλω)고 표현했고, A'에서는 "믿음과 착한 양심"으로 대변되는 바른 교훈을 "경계"(팔랑겔리아, παραγγελία)로 앞에 놓으니(파라티테미, παρατίθημι)라 달리 표현했다. 이로서 "바른 교훈"과 "믿음과 착한 양심"은 바른 교훈이라는 공통 주제로 서로 상보하는 모티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1a를 보면, 바른 교훈은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다. 그리고 교차대조법의 중심인 X를 보면,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은 15b의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는 케리그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이 디모데전서의 문을 열면서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는 한 가지 구조적인 모티프를 제시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바른 교훈 => 믿음과 착한 양심 =>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 =>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이 구조적 모티프는 디모데전서 1장은 물론 디모데전서 전체를 지배하는 중요한 모티프 중 하나가 된다. 이 구조에서 어긋나는 가르침은 모두가 "다른 교훈"이고, 이 구조를 벗어나는 자는 모두가 교회의 대적자로 간주된다고 판단된다.  


  2)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믿음과 착한 양심"이 바른 교훈,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연관된 것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믿음과 착한 양심"이 아니라 "믿음"이라 했으면 특별한 주목을 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특별히 "양심"을 그의 구원론의 핵심 단어인 "믿음"과 결합해서 구원론적인 의미를 가진 숙어 "믿음+양심 결합 문구"를 만들어 아주 중요하게 사용했다. 
  양심은 히브리적 개념이 아니라 그레코-로만적 개념이다. 히브리인들은 사람의 마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일은 야훼 하나님이나 율법이 하는 일이라 생각해 구약 성경에는 양심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런데 바울은 이 양심을 그의 가르침에 들여왔고, 마침내 양심을 그의 가르침에 중요한 주제로 사용하는 신학화 작업을 했는데 그 결정체가 디모데전서에 있다 학자들은 평한다. 이렇듯이 디모데전서에서 양심의 기능은 믿음과 결합해서 구원론적으로 아주 중요한 조건으로 제시되었다. 

  디모데전서에서 양심이 믿음과 결합해서 구원론적 의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단락이 1:18-20(A')이다. 여기에서 바울은 믿음과 양심을 결합한 이유로 양심을 버림으로 믿음에 파선하는 영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사건을 들었다(b 레이아웃). 

 

18a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παραγγελία)로써 명하노니(앞에 놓으니) 
a. 18b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b. 19a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b'. 19b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a'. 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 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

 

  양심이 올바로 작동하지 않으면 믿음이 파산의 지경에 이르는 이상 현상이 생긴다. 바울은 이에 해당되는 사람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므로 믿음과 양심의 결합이 얼마나 중요한 실재 사건인지를 확인해 주었다(a'). 이 일로 인해 바울이 할 수 있는 일은 양심을 버려 믿음이 파선된 자들이 더 이상 교회를 훼방하지 못하도록 징계를 받게 내어 주는 것이었다 바울은 회고했다(a'). 그들은 사단에게 "넘겨져"(파라디도미, παραδίδωμι) 사단의 소유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믿음과 양심의 분리, 믿음과 양심을 별개의 것으로 보는 이원론적 신앙은 성도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바울은 이 현상을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의 파괴로 달리 불렀다(1:4). 
 

  이로서 우리는 디모데전서에서 양심은 믿음만큼이나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가르침은 믿음과 삶의 이원화로 진통을 겪는 한국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말할 수 있다. 믿음은 양심과 함께 작동한다. 디모데전서를 보면 양심과 관계없이 믿음만 작동하는 신자의 존재는 불가능하다. 문제는 이것이 아직 한국 교회에 많이 알려지지 않아 바울이 디모데전서에서 사용하는 "믿음+양심 결합 문구"의 가치를 올바로 보지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후에 보겠지만 "믿음+양심 결합 문구"는 디모데전서에서 "말씀+경건 결합 문구"와 교호적으로 사용되어 대적자들의 정체를 밝히고, 교회를 향해 윤리적인 명령을 내리는 근거가 된다. 


  3) 바울 사도는 4b절에 다른 교훈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ἢ οἰκονομίαν θεοῦ τὴν ἐν πίστει)을 이루지 못한다 경계를 주었다(팔랑겔로, παραγγέλλω, 명사 팔랑겔리아(παραγγελία)의 동사형). 그리고 5절을 보면,  경계(팔랑겔리아 παραγγελία)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라 말한 후, 평행법에서 대조가 되는 A'의 18a절과 19a절에서 디모데에게 "경계"(팔랑겔리아 παραγγελία)를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짐"이라 설명했다. 이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4b절 : 경계를 준 이유 - "바른 교훈의 목적"을 이룸 =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

  5절 : 바른 교훈을 이루기 위한 경계의 목적 =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

  18a절과 19a절 : 경계 =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짐"

 

  바울의 설명은 "경계"라는 말과 "바른 교훈" 이란 말이 번갈아 나타나면서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강조하는 모양이다. 그 결과 "바른 교훈"을 이루기 위한 "경계"로 성취되어야 하는 "믿음과 착한 양심"의 특징을 대표하는 용어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이고,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의 완벽한 모델이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라 정의할 수 있다. 바울은 경계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사용하면서 독자들에게 하나의 도식을 그려준다. 그것은 "경계" =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 =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 이라는 도식이다. 


  "경륜"(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은 단어가 만들어진 원리로 보면 "오이코노모스(οἰκονόμος)의 업무, 일, 사역(μία)"이라는 의미이다. 오이코노모스는 청지기를 말한다. 그래서 "경륜"(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은 집 또는 가정(오이코스, οἶκος)을 법(노모스, νόμος)에 따라하고 운영하는 청지기(오니코스+노모스, οἶκος+νόμος)의 일 또는 업무이다.

  바울은 이 경륜이 "믿음 안에"(in the faith) 담겨져 있다 설명했다. 그러니까 "믿음 안에 있는 경륜"은 "믿음(이라는)-청지기 안에 있는 업무"가 된다. 이를 쉽게 풀이하면 믿음을 청지기와 같이 사용하는 하나님께서 믿음이 업무를 잘하도록 믿음 안에 설정해 놓으신 신적인 원리, 신적인 섭리를 말한다. 그러니까 "믿음 안에 있는 경륜"은 단순히 믿음과 동의어가 아니고 "믿음 안에 담겨진 신적인 작동 원리나 법칙"을 말하는 것이다. 믿음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야 하는 목표는 구원이므로, "믿음 안에 담겨진 신적인 작동 원리나 법칙"은 구원을 이루기 위해 믿음 안에 설정된 믿음의 업무, 믿음의 사역이 된다.

  믿음이 신자에게서 작동하여 구원에 이르게 만드는 원리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가르침이다. 디모데전서 1장을 보면, 믿음 안에 담겨진 신적인 작동 원리(믿음의 경륜)의 청사진(blueprint)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다.

 

  이 용어는 디모데전서에서만 나오는 것으로 새롭고 독특한 가치가 있다. 바울은 다른 편지에서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얻는 진리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바울이 디모데전서에서 사용한 이 용어 덕분에 우리는 "신자들이 예수를 통해 구원을 얻는 사건이 왜 "믿음"을 수단으로 사용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바울의 해답인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은 답한다. 믿음은 사람의 마음에서 양심과 함께 작동하여 사랑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거듭난 신자의 마음에는 거듭난 선한 양심이 믿음과 함께 작동해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성품인 사랑(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진짜 믿음의 건강한 작동 원리로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해준다.

  그러므로 거듭난 양심의 작동과 마음에 맺어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보고 참 믿음이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다. 참 믿음과 거듭난 선한 양심이 협력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만들면 신자에게서 나타나는 증상들이 디모데전서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덕목들, 선한 양심과 믿음을 가지려는 싸움, 경건의 훈련, 자족하는 마음, 적대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행동들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다소 과장된 표현일지는 몰라도 온라인상에 게재된 디모데전서 1장의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글들을 찾아보면 이것을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 프레임으로 설명하는 것을 거의 본 일이 없다. 이는 이 부분에 대한 연구와 홍보가 시급하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그러면 보다 구체적으로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오이코노미아(경륜)" =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 프레임은 어떤 것인가? 간단하게 서술한다.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라는 바울의 표현에서 우리는 바울의 마음에 그려진 하나의 청사진을 예측할 수 있다. 그것은 믿음의 메커니즘으로 믿음이 믿음의 기능을 올바로 수행하는 작동 구조이다.
  가장 먼저, 마음이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오이코노미아의 기초요 중심이다. 마음에서 믿음이 생기고 자란다(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양심도 마음 안에서 또는 마음과 연관되어 활동한다. 롬 2:15을 보면 양심의 기능은 마음에 새겨진 율법을 실행하는 것이다("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양심은 마음에 새겨진 율법의 발현을 돕는다. 또 롬 9:1을 보면 바울은 양심이 마음의 사정을 증거 한다고 말했다("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 하노니"). 그러니까 마음은 양심의 활동 장소요 마음이 양심의 활동 대상이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 잘 아는 것과 같이 사랑은 마음에 맺히는 인격적 열매로 바울은 신자의 마음에 생기는 사랑은 성령에 의해 우리의 마음에 부어지는 성령의 열매(갈 5:22)요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롬 5:5). 결국 양심과 믿음과 사랑, 이 모든 것들은 모두 마음에 기초를 두고 마음에서 활동하고 마음에 열매를 맺는다.
  두 번째로, 1:5절에 나오는 바울의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설명한 경계의 목적을 보면 마음과 양심과 믿음"에서"(에크, ἐκ, ~에서(부터)) 사랑이 나온다. 마음에 있는 양심과 믿음이 상호작동한 결과로 사랑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사랑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오이코노미아(경륜)의 최종 결과물이다. 이로서 우리는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은 사람의 마음이 최종적으로 사랑을 만들도록 믿음과 양심이 함께 작동하는 믿음의 메커니즘, 믿음의 작동 원리라 풀어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바울은 믿음의 자리인 마음을 (거듭난)양심과 (참)믿음이 작동하는 기초로 보고, 믿음을 통해 결국 사랑이 만들어지는 믿음의 작동 원칙을 "믿음 안에(in the faith) 하나님께서 설정해 놓으신 신적 경륜"이라 칭한 것이다. 이는 아래와 같은 도식을 제시해준 것이다. 필자는 이를 "믿음-사랑 프레임"이라 부르고, 이것으로 바울의 믿음-구원론을 아주 균형 있게 설명할 수 있다 생각한다.  

디모데전서 1장의 믿음-사랑 프레임

  이어지는 디모데전서의 가르침을 보면 "믿음-사랑 프레임"은 조건이 되는 두 개의 믿음의 선한 싸움 말씀(딤전 1:18-19, 특히 딤전 6:11-12)과 결합해서 아래 그림으로 요약한 "믿음-사랑-영생 프레임"으로 진전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로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디모데전서의 믿음-사랑-영생 프레임


   "믿음-사랑 프레임"을 가진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오이코노미아(경륜)는 디모데전서 전체를 지배하는 모티브로, 다양한 모티프들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표적인 모티프가 바울이 디모데전서 1장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바른 교훈 또는 다른 교훈", "경계",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는 명령 등이다. 이 모든 주제들은 "믿음-사랑 프레임"의 잣대에서 판정되고 명령된다. 이로서 우리는 비록 표현은 모두가 다르지만 표현 배후의 모티프가 같다는 사실을 주목할 수 있다.


  4)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오이코노미아(경륜)의 "믿음-사랑 프레임"의 구원론적 가치는 절대적이다. 
  3a절을 보면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대적자들에게 "경계"를 하라고 명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바른 교훈을 다른 교훈으로 바꿀 정도로 양심에 불도장(화인)을 맞아 외식자와 거짓말 장이가 되었고(4:2), 결국 믿음이 난파되었다(나우아게오, ναυαγέω). 그런데 대조되는 짝 단락인 18a절을 보면 바울은 아들 디모데에게도 "경계"를 했다. 주목할 것은 바울이 대적자들에게 준 "경계"(3b절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5절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을 가지라")와 디모데에게 준 "경계"(19a절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가 같다는 사실이다. 문제를 일으킨 대적자들에게 경계를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디모데에게 바울이 믿음이 난파된 대적자들과 동일한 경계를 준 것은 당황스러울 수 있다. 이것이 디모데전서에서 바울이 사용한 경계의 특징이다. 바울이 선언한 경계의 대상에는 대적자들과 디모데를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이 포함되어 있다. 디모데는 물론 성도들도 이 경계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믿음-사랑 프레임을 어긴 것이 되어 믿음에서 나는 사랑에 작동 오류, 믿음의 난파(파선)가 생긴다. 그러면 디모데를 비롯한 모든 성도도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지 못하고 복음을 변론으로 바꾼 대적자들과 같은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다(1:4). 이는 믿음-사랑 프레임이 신자의 구원에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도록 해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이 믿음에서 나는 사랑의 작동 오류를 벗어나는 방법이 바울이 디모데전서에서 계속 강조하는 대적자들과 반대되는 삶, 또는 대적자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삶인 "(믿음의) 선한 싸움" 즉 "경건"이다. 이는 바울이 경건을 사용한 곳이 다른 교훈과 믿음의 선한 싸움을 강조한 곳과 일치한다는 사실로 아주 간단하지만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디모데전서에서 경건은 모두 10번 사용되었는데 모두 다른 교훈과 믿음의 선한 싸움이 언급된 곳(파란색)에 배치되어있다. 

A. 다른 교훈, 구원과 선한 싸움, 경건(1:3-2:15) - 1:9, 2:2
  B. 직분자의 자격(3:1-13) 
    C. 경건의 비밀(3:14-16) - 3:14, 16
      X. 성령의 경고(4:1-5)
    C'. 선한 일군과 경건의 연습(4:6-16) - 4:7, 8
  B'. 성도들을 대하는 원리(5:1-6:2)
A'. 다른 교훈, 구원과 선한 싸움, 경건(6:3-19) - 6:3, 5, 6, 11

  그래서 경건과 믿음의 선한 싸움 주제도 경계 주제와 마찬가지로 실패할 경우 구원에 치명타가 있음으로 선언된다(딤전 6:3-5, 딤전 1:18-19).

  딤전 6:3-5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4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딤전 1:18-19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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