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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마태복음

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 : 마태복음 13장(1)

by 예다준 2022. 8. 8.

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 : 마태복음 13장(1)

 

  마태복음의 중반부인 11-12장을 읽다 보면 뜻밖의 내용에 놀라게 된다. 그것은 예수님의 천국 전파 사역을 제자들과 같은 소수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받아들였지만 대다수 유대인들, 특히 지도자급 인사들은 노골적으로 예수님을 반대하고 미워했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아들이 놀라운 하늘의 권능과 계시적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는데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미워하고 격렬하게 반대하며 논쟁으로 예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은 생각 밖의 황당한 결과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상황에 대해 비판적 분석과 평가를 하셨다. 그리고 그 결과를 공개한 것이 마태복음 13장이다. 주님의 분석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불신앙은 예수가 전하는 하나님 나라의 특징과 연관된 현상으로 이제 우리가 살펴볼 "천국의 비밀"로 요약된다. 이 천국의 비밀을 마치 수수께끼(비유의 히브리어는 "마샬"이다. 이 단어는 격언, 풍자, 비유, 풍유, 수수께끼 등으로 해석되고, 비유의 헬라어인 "파라볼레"도 마찬가지이다.)와 같이 설명한 것이 마태복음 13장의 천국 비유들이다.


  여기에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들의 세세한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비밀을 담은 8개의 비유들은 마태의 뜻한 바 의도를 따라 치밀하게 짜여진 구조틀안에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것은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들에는 개별적인 교훈이 있는 것은 물론 비유 전체에도 통합적인 메세지가 있다는 의미이다. 비유들은 서로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구조적 문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가능한 대로 그것에 집중한다는 말이다. 
  특히 여기에서는 저자인 마태의 특유한 문체와 구조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오늘 우리이 예수님의 천국 비유들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데에 예수님 당시인들은 모르는 한 가지 어려움이 있다. 당시인들이라면 어린이라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가 오늘 우리에게는 무슨 뜻인지 아리송하고 애매모호하고 이상하게 보이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 이것 때문이다.
 


1. 마태복음 13장의 문학적 구조를 찾아서

  마태복음 13장은 21세기 현대인과 다른 1세기 히브리인의 사고와 표현 방식에 따라 기록되었다. 이를 간단하게 (히브리적) 문학적 방법이나 문학적 구조라 부르겠다. 문제는 우리들은 이것을 알지못하기 때문에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들이 그저 비유들을 모아놓은 것으로 보이고 비유들을 통해 성경이 말하고 있는 메세지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절구절의 상세한 내용을 이해하기 전에 마태복음 13장의 문학적 구조를 먼저 보는 것이 충분한 이해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1-1. 마태복음 13장 내용 정리

  우선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내용들을 우리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열거하면 보통 이렇게 정리된다.

1. 씨 뿌리는 비유(13:1~23)
2. 곡식과 가라지 비유(13:24~30, 13:36~43)
3. 겨자씨 비유(13:31-32)
4. 누룩에 관한 비유(13:33)
5.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13:44)
6.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비유(13:45-46)
7.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 비유(13:47-50)
8. 서기관과 집주인 비유(13:51--53)

  이 정리는 마태복음 13장을 8개 비유 중심으로 구분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체 내용을 담지못한 불완전한 정리이다. 구분이 덜된 것이 있고 생략된 것도 있다.
  먼저 생략된 것을 보면 13:10-17의 구약 인용 부분과 13:34-35의 두 번째 구약 인용 부분이 있다. 자세히 읽어보면 이 부분들은 비유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하는 목적을 설명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구약 성경을 증거 본문으로 예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신 의의를 구약 예언을 성취한 것이라 설명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비유들과 명백하게 구별된다. 
  또 13:18-23과 13:36-43도 비유와 구별해야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비유가 아니라 이미 제시된 비유에 대한 해설이다. 앞의 것은 씨 뿌리는 비유 해설이고 뒤의 것은 곡식과 가리지 비유 해설이다. 더군다나 이 부분은 비유에 대한 구약 인용과 결합되어 있어 비유들과 명백하게 구별된다. 


  다음은 구분이 완벽하지 않은 것으로 13:1-3a와 13:53을 들 수 있다. 이 부분들을 언급하는 것은 보다 자세하고 완벽한 분석을 위해서이다. 13:1-3a은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들을 시작하는 도입 부분이고 13:53은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들을 결론짓는 마무리 부분이다. 결국 마태복음 13장의 순수한 비유 본문은 13:3b-52로 구별된다. 이상의 사항들을 종합해서 마태복음 13장을 보다 완벽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이 된다.

- 도입(13:1-3a)
1. 씨 뿌리는 비유(13:3b~9)
2. 구약 인용(비유 목적1)과 씨 뿌리는 비유 해설(13:10-17, 18-23)
3. 곡식과 가라지 비유(13:24~30)
4. 겨자씨 비유(13:31-32)
5. 누룩 비유(13:33)
6. 구약 인용(비유 목적2)과 곡식과 가리지 비유 해설(13:34-35, 36-43)
7.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13:44)
8.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비유(13:45-46)
9.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 비유(13:47-50)
10. 서기관과 집주인 비유(13:51-52)
- 마무리(13:53)

  위 도표를 통해서 마태복음 13장은 도입과 마무리를 제외하면 8개의 비유와 두 개의 구약 인용 설명과 비유에 대한 해설로 구성되었다 정리할 수 있다. 아마 여기까지가 현대적 논리로 분석할 수 있는 일반적인 수준이라 생각한다. 병렬적 논리로 만들어진 마태의 문체와 구조의 특성을 따라 본문을 분석하면 현대적인 방법으로 발견하기 어려운 숨겨진 본문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1-2. 마태복음 13장 전후 문맥의 구조

  마태복음 13장 전체 문학적 구조를 분석하려면 주의할 것이 있다. 그것은 앞 장의 12:46-50이 마태복음 13장과 긴밀히 연관이 있는 본문이기 때문에 13장 말씀들과 함께 보아야만 한다는 점이다. 성경에 표기된 장 구분으로 성경 내용을 구분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래서 마태복음 12장과 13장을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볼 수 있다. 누군지 모르지만 신뢰할만한 사람이 보기 쉽도록 만들었겠다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성경 원문에는 장절 구분이 없고, 이것은 서양의 인쇄업자들이 성경책을 출판하기 위해 임의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장절 구분을 의미 있는 문단 나누기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이를 감안하고 마태복음 13장 전체 구조를 히브리적 구조 분석 방법으로 표기하면 이렇다.

A.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예수의 참 가족(12:46-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X. 천국 비유(13:1-53)
 A. 예수의 옛 가족으로 예수를 배척한 고향사람들(13:54-58)
  "모친, 그 형제들,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느냐?"



  가운데(X)에 천국 비유들이 있고, 앞과 뒤에 주님께서 비유들을 가르치기 전후에 일어났던 사건들이 실려있는데 이것들이 아주 흥미롭다. 언듯 보면 두 기사(A와 A')는 별개의 다른 사건이다. 하지만 기사의 주제를 보면 기가막힌 연관성을 가진 사건임을 알 수 있다. A에서 주님께서는 육신적인 가족인 모친과 형제들과 누이들을 거부하고 새로운 가족을 선언하셨다. 그런데 A'에서는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의 육신적인 가족들을 핑계로 예수님을 거부했다. "육신적인 가족관계"와 "거부"라는 주제가 엎치락뒤치락한다. A에서 주님께서는 예수님의 새로운 가족에 대해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라 정의하시고 옛 가족을 거부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A'를 보면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주님께서 거부한 옛 가족을 가지고 예수님으로부터 나타난 놀라운 지혜와 권세, 즉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예수님을 거부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 사건들은 그저 시간이 지나가면서 일어난 일들로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성경을 기록하는 마태에겐 두 사건은 서로 밀접한 영적인 연관성 안에서 일어나 성경에 기록될 때 대조되는 문학적인 짝의 자리에 위치하는 사건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마태복음 13장의 시작인 예수님의 참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마지막인 고향 사람들의 예수님 배척 이야기는 영적인 의미가 아주 밀접한 짝으로 문학적 구조에서 보면 마태복음 13장 전체를 아우르는 문학적 묶음의 시작과 마무리가 되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X) 천국 비유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교차대조법의 안쪽 레이아웃은 메세지의 중심이거나 강조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마태복음 13장의 천국 비유는 앞과 뒤의 두 사건에 담긴 교훈을 주님께서 비유로 설명한 메인 메세지로 이해할 수 있다. 후에 보겠지만 천국 비유들(X)의 중심 메세지는 천국 말씀을 깨닫고 열매를 맺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예수 천국에 합당한 자요 천국을 참으로 소유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를 마태복음 13장 비유들의 가운데 부분인 진주 비유와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를 빌어 표현하면 예수가 전파하는 천국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무슨 댓가를 치르더라도 옛 시대의 가르침을 버리는 자가 참 하나님의 식구라는 교훈이 된다.
  이해를 돕기위해 주제를 상징하는 주인공에 대한 묘사에 따라 마태복음 13장의 문학적 구조를 다시 그리면 아래와 같다.

A. 예수의 참 가족 -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50절)
  X. 천국 비유 - 천국 말씀을 깨닫고 열매(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예수 천국 말씀을 선택하는)를 맺는 자(23, 44-46절)
A. 육신적 지식으로 예수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배척한 고향사람들(55-57절)
 
  A와 A'는 완전히 반대되는 두 인물이 대조되어 하나의 주제를 말하고, X에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예수의 참 가족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이것이 마태복음 13장의 전체 구조를 통해서 읽을 수 있는 메세지이다.
 

 

  1-3. 두 개의 "구약 인용 + 비유 해설" 단락은 마태의 실수인가?

  마태복음 13장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부분인데 그렇게 대접을 받지 못하는 부분이 "구약 인용 + 비유 해설" 구조를 가진 두 단락이다. 구약 인용은 주님께서 비유를 사용한 목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비유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 두 가지로 설명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구약 인용과 설명을 연이어 언급하지 않고 중간을 끊고 그 사이에 비유를 세 개씩이나 삽입한 것이다. 현대인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도 말도 글도 쓰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문맥이 끊어지고 불필요한 말을 중간에 삽입하여 청자(독자)들에게 오히려 혼란을 준다. 그래서 우리 눈에는 이런 식의 마태의 논리 진행이 이상하고 더 나아가 실수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마태의 실수가 아니라 마태가 현대인의 논리와 다른 논리로 복음서를 기록했음을 보여주는 아주 유력한 증거이다. 히브리인인 마태는 현대인들의 논리 방식인 순차적 직선적 논리를 사용하지 않고 병렬적 논리를 사용했음이 성서학자들에 의해서 50여년 전부터 연구되었다. 마태가 사용한 병렬적 논리는 두 개 이상의 주제들을 대비되는 짝으로 만들어 메세지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 방식의 특징은 대비되는 짝의 상관관계가 주제의 흐름이나 사건의 순차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점이다. 성경 저자가 활동했던 1세기 유대문화(더 넓게는 그레코-로만 문화)에서는 누구나 이 방식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상하게 보이는 마태의 표현과 문체들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성경 저자의 독특한 문체와 구조가 마태복음 13장 이해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히브리인의 병렬적 논리는 마태복음 13장의 "구약 인용 + 비유 해설" 구조와 같이 구절의 일부분에 나타나는 것을 넘어 13장 전체를 병렬적 구조로 배치한 문학적 구조로도 나타난다. 이것을 "평행법"이라 부른다. 성경의 전체 구조가 평행(병렬)되는 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때 평행되는 짝은 서로 작용하여 본문 내용과 구별되는 메세지를 나타내고 평행되는 짝들이 모여서 완성되는 전체 평행법은 또 다른 메세지, 이른바 구조적 메세지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이것을 무시하면 성경 이해에 장애가 생기고 반대로 이것을 이용해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는 상상 이상으로 풍성해질 것이다. 

 

 1-4. 해결해야할 문제 : 6개 비유에 대한 분석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들의 문학적 구조를 분석할 때 한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8개의 비유들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로 특히 첫 번째와 마지막 비유가 아닌 중간의 6개 비유에 대한 분석에 대한 것이다. 첫 번째와 마지막 비유는 마태복음 13장 비유들의 서론과 결론(또는 도입과 마무리)으로 보는 것에는 대부분 일치한다. 하지만 나머지 6개 비유에 대한 분석은 논의가 필요하다. 
  적지않은 학자들은 "트리플 비유"라고 해서 6개 비유를 3개씩 묶어 두 단락으로 나누어야 한다 주장한다. 그래서 "성장에 대한 비유" 단락과  "기타 비유(세 가지 다른 비유)" 단락으로 나눈다. 

성장에 대한 비유
  - 곡식과 가라지 비유
  - 겨자씨 비유
  - 누룩 비유

기타 비유(세 가지 다른 비유)
  -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비유
  -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 비유

  하지만 이 방식에는 의미 있는 비판과 수정이 필요하다. 이 분석 방식은 평행법의 짝이라는 측면에서 어울리지 않는 것은 물론 비유 본문이 나타내는 의미를 무시하고 대충 넘어가게 만들기 때문에 동의하기 어렵다. 이들은 자신의 분석을 옹호하기 위해 마태는 3가지 요소들을 합쳐서 하나의 묶음으로 만들기 좋아하는 문학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 주장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를 처음 비유인 씨 뿌리는 비유와 마지막 비유인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 비유를 제외한 나머지 6개 비유를 세 개씩 한 묶음인 "트리플 비유"로 이해해야 한다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본문을 분석하는 것은 앞뒤가 전도된 일이다. 본문의 문맥과 문학적 구조를 분석한 결과 3가지 요소를 하나로 묶는 마태의 문학적 경향을 확인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마태의 문학적 경향을 전제하고 본문을 분석하는 것은 성경 본문을 무시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이런 분석은 두 가지 문제를 가진다.


  가장 먼저, 평행법의 짝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이들의 주장대로 "성장에 대한 비유"와 "기타 비유"를 평행법의 짝으로 보면 이것들이 평행법으로 존재하는 이유가 3이라는 문학적 숫자와 배치된 위치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는 평행법의 짝이 나타내고자 하는 메세지가 없어 결정적인 문제가 된다. 평행법은 문학가들이 연구를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처럼 전달과 기억 매체들이 거의 발달되지 않은 상황에 살았던 고대인들이 그림을 그려주는 것과 같이 회화적으로 말하고 글을 씀으로 기억과 전달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사용한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 도구였다. 이때 평행법의 짝들은 서로가 반복이나 강조, 반전, 수식 등과 같은 방식으로 이어져 이미지를 보여줌으로 청자(독자)들이 이 관계를 암묵적인 메세지로 인식하도록 작용했다. 이것을 이미 상식처럼 잘 알고 있었던 예수님 당시인들은 주님께서 비유들을 평행법으로 설교할 때 즉시로 평행법의 짝들과 그 짝들이 연결된 상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고, 그 짝들이 그려준 (문학적) 이미지를 기억하여 다른 이에게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평행법의 짝을 서로 연관된 관계없이 그저 만들어 버리면 청자들은 들은 바에서 문학적 이미지를 볼 수 없고 그래서 들은 바를 선명하고 오랫동안 기억하여 전달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애써 평행법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두번째로 이들의 분석은 성경 본문의 메세지를 가려버리는 치명적인 문제를 가졌다. 
  먼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주인 비유에는 성장이 중요 주제인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것만이 이 비유의 주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주인 비유에는 비유 본문(24-30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유를 해설해 주는 부분(36-43절)이 추가되어 있고, 이 해설에는 종말론적 심판이 가장 큰 주제로 제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비유의 일부만 강조하거나 무시하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비유의 본문이 강조하는 주제와 비유의 해설이 강조하는 주제를 모두 인정해야만 한다. 마태가 두 가지를 모두 기록한 것은 두 가지 모두 의미 있다 여긴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우리는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주인 비유를 성장에 대한 것은 물론 종말론적 심판으로도 분석해야 한다. 특히 의인과 악인에 대한 종말론적 심판이 함께 담겨 있는 비유가 평행되는 반대쪽 위치에 있다면 두말할 나위가 없어진다. 그것이 가장 잘 어울리는 짝이기 때문이다. 실재로 마태는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주인 비유를 성장과 함께 종말론적 심판이 주제인 비유(그물 비유)를 짝의 자리에 배치했다.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비유(필자 분석의 C')와 그물 비유(필자 분석의 B')를 "기타 비유(세 가지 다른 비유)"로 보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기타 비유" 또는 "세 가지 다른 비유"라는 명칭 자체가 세 비유에는 함께 묶을 수 있는 공통점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세 비유를 애써 하나로 묶지 않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다. 
  본문을 살펴보면,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비유(필자 분석의 C')는 누가 보아도 주제가 같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들에 비해 그물 비유(필자 분석의 B')는 완전히 다른 주제로 전혀 비슷하지 않다. 그러면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비유를 의미상 한 묶음으로 보고 그물 비유는 따로 떼어놓고 해석하는 것이 당연한 행동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이 있다. 그물 비유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주인 비유를 비교해 보면 주제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둘 다 의인과 악인이 공존하는 천국의 현재 모습이 그리고 이들에 대한 종말론적 심판이 핵심 주제로 같다(후에 보지만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메세지가 있다). 같은 주제의 비유가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전혀 연관이 없는 비유들을 하나로 묶어 평행법의 레이아웃으로 만드는 것은 상식적인 방법이라 말할 수 없다.

  이상의 이유들로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를 처음 비유인 씨뿌리는 비유와 마지막 비유인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 비유를 제외한 나머지 6개 비유를 세 개씩 하나로 묶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주인 비유와 그물 비유와 연관 지어 해석해야 한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비유 자체의 의미를 충실하게 부각하는 것과 함께 숨겨질 뻔했던 평행법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준다.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주인 비유를 분리하면 비유는 1(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주인 비유)+2(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 구조가 되고, 그물 비유를 분리하면 비유는 2(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비유)+1(그물 비유)의 구조가 된다. 이것은 아래와 같이 평행법의 짝이 되는 전형적인 모양새를 가지게 된다. 

a. 1 :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주인 비유
  b. 2 :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
  b'. 2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비유
a'. 1 : 그물비유

  여기에 처음과 마지막 비유를 추가하면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들은 다음과 같은 모양을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 

a. 씨뿌리는 자 비유
  b.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주인 비유
    c.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
    c'.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비유
  b'. 그물비유
a'.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 비유

  마지막으로 앞에서 논했듯이 비유를 단지 3개씩 묶어버리는 해석을 취하면 마태가 글을 그런 방식으로 조직했다는 경향은 말할 수 있지만 마태가 비유를 묶음으로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를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비유와 대조되는 짝으로 보면 두 비유가 어우러져 나타내는 예수님의 비장한 제자도가 우리 눈에 선명하게 보인다. 이것은 이어지는 분석에서 살펴본다

 


  1-5. 마태복음 13장 비유 본문의 구조

  이제 마태복음 13장의 비유 본문의 구조를 볼 차례이다. 앞에서 살펴본 구조를 거시적인 구조라 한다면 이제 살펴보는 구조는 비유에만 집중된 미시적인 구조이다. 마태복음 13장 비유 본문(13:3b-52)의 문학적 구조는 아래와 같이 분석할 수 있다. 

A. 예수 천국 말씀에 대한 반응들을 진단한 비유(13:3b-9)
  ¤ 막간(13:10-23)
  B. 의인과 악인이 공존하는 천국의 현재와 악한 자에 대한 종말론적 심판에 대한 비유(13:24-30)
     C. 보잘 것 없는 천국의 현재와 상상을 초월한 성장을 이루는 천국에 대한 비유(13:31-33)
     ¤'. 막간(13:34-43)
     C'.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한 비유(13:44-46)
  B'. 의인과 악인이 공존하는 천국의 현재와 악인에 대한 종말론적 심판에 대한 비유(13:47-50)
A'. 예수 천국 말씀을 올바로 받아들인 이상적인 제자에 대한 비유(13:51-52)

  위 도표는 아래 도표를 단략하게 요약한 것이다. 

A. 예수 천국 말씀에 대한 반응들을 진단한 비유 - 씨 뿌리는 자 비유(13:3b-9)

   ¤ 막간(13:10-23)
    a. 비유의 목적 - 구약 성취
      b. 비유 설명 - 씨 뿌리는 자 비유

  B. 의인과 악인이 공존하는 천국의 현재와 악한 자에 대한 종말론적 심판에 대한 비유 -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주인 비유(13:24-30)

    C. 보잘것없는 천국의 현재와 상상을 초월한 성장을 이루는 천국에 대한 비유 -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13:31-33)

   ¤'. 막간(13:34-43)
    a. 비유 목적 - 구약 성취
      b. 비유 설명 -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주인 비유

    C'.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한 비유 -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비유(13:44-46)

  B'. 의인과 악인이 공존하는 천국의 현재와 악인에 대한 종말론적 심판에 대한 비유 - 그물 비유(13:47-50)

A'. 예수 천국 말씀을 올바로 받아들인 이상적인 제자에 대한 비유 -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 비유(13:51-52)

   위 그림을 보면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들은 A와 A', B와 B'처럼 서로 대조를 이루는 짝들이 하나의 레이아웃을 만들고, 여러 레이아웃들이 겹쳐서 문맥을 이어가는 평행법으로 기록되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이런 방식으로 사고를 하고 말하고 글을 썼다. 마태복음 13장의 문학적 구조는 히브리인들의 대표적인 문학적 도구인 평행법이, 평행법 중에서 내향적 평행법이 사용되었다. 마태는 이 구조를 기초로 "막간"으로 구분되는 레이아웃의 위치를 변칙적으로 배치했다. 그래서 독자들은 각각의 레이아웃을 마음에 두고 본문을 묵상해야만 하고, 전체 본문의 메세지를 이해하려면 각 레이아웃의 의미를 살펴본 이후 전체 의미를 연동해서 살펴보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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