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저자 중심의 문체-구조적 성경 해석법

"칭의"를 중심으로 본 저자 중심 성경 해석의 중요성(2)

by 예다준 2022. 8. 18.

"칭의"를 중심으로 본 저자 중심 성경 해석의 중요성(2)

 

4. 저자 중심의 문체-구조적 해석법으로 본 사도 바울의 믿음-칭의 프레임의 특징과 구조

  앞의 관찰로 사도 바울의 칭의로 신약 성경 전체를 보는 일이 무리한 해석 방법임을 확인했다. 사도 바울의 칭의와 히브리서의 칭의, 야고보서의 칭의는 같지 않고 자신들만의 특징적인 의미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바울의 칭의의 특징적인 의미와 한계를 점검하는 것은 중요하고 필수적인 작업이 된다. 


  과연 바울은 믿음-칭의 프레임을 어떤 관점에서 보았을까? 그는 믿음-칭의 프레임을 성경에 기록하면서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이를 알아내기에 아주 적합한 방법은 바울만의 독특한 문체-구조를 살펴보고 그 결과물을 종합하여 칭의에 대한 바울의 생각을 재구성하고 성경 본문에서 검증 확인하는 방법이다. 

 

  이를 "성경 저자 중심의 문체-구조적 해석법"이라 칭한다. 이 방법은 특정 성경 저자만이 가지고 있는(그래서 그의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체적 구조적 특징들을 찾아서 성경 저자가 사용한 표현들의 고유한 의미와 기능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사실 이 방법은 대부분 성경 신학자들이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하지만 아직 일선의 사역자들과 성도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다. 

 

  4-1. 로마서의 전체 구조 안에서 칭의    

  로마서는 칭의의 책이다. 로마서 전체는 칭의를 설명하는 성경이다. 곧 칭의는 로마서의 핵심 주제이다. 그런데 로마서의 칭의가 "하나님 나라"라는 구조 안에서 진술되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과 15장을 "하나님 아들의 통치"를 강조하는 inclusio로 구조화했다. 로마서 1장은 로마서의 시작이고 15-16장은 로마서 본론의 마지막이다. 바울은 시작과 마지막에 동일 주제로 로마서 전체를 아우르는 문학적 구조틀을 설치해서 로마서 전체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안에 칭의론을 집어넣었다. 

 

  이 방법이 아래 그림과 같이 히브리인들이 많이 사용했던 "수미상관법"(inclusio)이다.

  A. 1:2-4 다윗의 씨(하나님의 나라)
     X. 1-14장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구원(칭의론)
  A'. 15:7-12 이새의 뿌리(하나님 나라)

  로마서 전체는 '다윗의 씨'(1장)이고 '이새의 뿌리'(15장)인 하나님의 아들의 통치(다스림)를 메세지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즉 칭의론을 사용하는 구조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이 수미상관법은 로마서의 칭의론이 하나님 나라(통치)와 직결되었음을 보여주는 구조적인 증거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 안에 칭의론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리는 것이 바울이 만든 로마서의 구조이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틀에서 로마서의 칭의론을 이해해야 한다고 그의 해석적 의도를 보여준 것이다. 

 

  4-2. 바울 서신내의 칭의와 하나님 나라 병행적 문체들  

  이러한 바울의 구조적 해석적 의도는 로마서의 여러 부분에서 하나님 나라와 칭의를 병행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도 나타난다. 이것이 바울이 칭의를 사용하면서 항상 사용했던 바울의 문체적 특성이다. 이 문체적 특성은 바울이 칭의를 어떤 관점에서 무엇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가를 보여주는 지시등과 같은 역할을 한다.

  4-2-1. 복음에 대한 두 차원의 정의(롬 1:3-4)

  가장 먼저, 로마서 1장에 나오는 복음에 대한 두 가지 정의에서 칭의에 대한 바울의 해석적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 바울은 여기에서 복음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1:3절에서는 '기독론적"(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나라의 통치, 왜냐하면 다윗의 씨가 나오므로)으로 1:16에서는 "구원론적"(칭의론)으로 설명했다.

 
  기독론적인 복음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주와 그리스도"이다. 예수는 다윗의 씨(혈통)로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능력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온 세상을 다스리는 "큐리오스"(주)가 되었다(롬 1:3-4). 이것이 기독론적으로 복음을 정의한 것인데, 주가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왕권을 휘두르는 대권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기독론적 복음 정의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핵심 메세지가 되는 것이다. 

  로마서 1:3-4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리고 구원론적인 복음은 종말론적 심판에서 죽음의 형벌로 부터 구원을 받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1:16) 바울은 정의했다. 종말론적 심판에서 죽음을 면하는 일은 의인이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의인은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의인이라 선언된다. 이 의인이라 선언됨이 칭의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론적 복음 정의는 칭의가 핵심 메세지가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울은 복음을 일부러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강조하는 기독론적 방법과 칭의를 강조하는 구원론적인 방법, 두 가지 방법을 함께 사용했다는 사실로, 이것이 구원을 설명하는 바울만의 독특한 아이디어요 문체이다. 그리고 이것은 로마서 전체 구조와 일치한다. 그렇다면 로마서를 집필할 때 바울의 마음에는 하나님 나라와 칭의를 하나로 통합하는 법칙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우리는 사도들로 부터 전해진 복음, 이른바 "사도적 복음"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초점이 맞추어졌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바울은 이 기초 위에 자신의 복음을 발전시켰다. 그것이 로마서 1장에 나오는 사도적 복음을 포함하는 바울의 복음에 대한 두 측면의 정의이다.


  학자들은 복음을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는 바울의 전략은 두 가지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1) 먼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과 자신에게 주어진 계시와 체험을 모두 함께 잘 드러냈다는 점이다. 

  바울은 복음을 하나님 나라의 통치와 칭의 두 가지를 병행해서 정의 내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그는 회심 이후 자신에게 생겨난 "그리스도적 해석"(interpritatio chritiana)을 계속해서 발전시켰는데 그 결정체 중 하나가 복음을 두 가지 방식으로 정의 내리는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자신의 복음의 핵심에 하나님 나라를 둠으로 예수님의 복음의 핵심인 하나님 나라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승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 만의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복음에 대한 다른 그림들도 발전시켰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칭의"였다.


  2) 두 번째로 바울 복음의 강점은 하나님 차원의 일과 사람 차원의 일을 동시에 설명한다는 것이다. 

  바울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일과 동시에 사람의 일이 있다. 그러기에 바울은 자연스럽게 복음을 두 가지 차원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는 앞에서 진술한 로마서의 inclusio를 다시 상기하면 추측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의미하는 A와 A'는 하나님 차원의 일이다. 그와 반면에 가운데 X는 사람 차원의 일이다. 복음의 기독론적인 설명(A와 A')은 객관적인 구원 사건에 대한 진술로 하나님 차원의 일이다.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등극해 주와 그리스도 됨으로 일어났다. 복음에 대한 구원론적인 설명(X)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사건을 말하기에 인간 차원의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객관적인 구원 사건인 예수의 주와 그리스도이심을 믿음으로 종말론적 심판에서 제외되는 칭의로 나타나는 구원이다. 이런 방법으로 바울은 복음을 하나님 차원과 사람 차원에서 모두 충족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4-2-2. 초대교회 세례 고백(롬 10:9-10)

   또 우리는 롬 10:9-10을 주목할 수 있다. 이 구절은 초대교회의 세례 때 실제로 행해진 신앙고백문이다. 불신자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는 일은 사람의 눈으로는 교회의 멤버가 되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차원에서는 죄인이 의인으로 칭의 되는 순간이다. 바꾸어 말하면 세례는 칭의의 콘텍스트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칭의의 콘텍스트에서 고백되는 주제가 무엇인가이다. 

  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것은 "예수가 주가 되었다"는 것이다. 주는 당시 로마 황제 큐리오스를 의미하는 단어로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세례 때의 고백은 예수가 하나님의 통치를 휘두루는 왕이 되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고백을 하면 칭의가 된다는 것은 칭의의 근거가 하나님 나라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세례 때의 신앙고백은 칭의의 근거가 하나님 나라의 통치임을 한 눈으로 보여주는 아주 명백한 증거가 된다. 

  4-2-3.  종말 심판대에서의 칭의

  세례 때 받게되는 칭의는 성도로서 처음 받는 칭의라면 하나님의 종말 심판대에서 받게 되는 칭의는 성도로서 마지막에 받는 칭의이다.

 

  살전 3:13에는 모든 성도가 받게 될 마지막 칭의에 대한 바울의 설명이 나오는데 여기에 성화가 나온다. 마지막 심판은 칭의 콘텍스트이다. 그때 의로움과 의인됨이 선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화는 하나님 나라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칭의의 콘텍스트도 처음 칭의의 콘텍스트인 세례 때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주제가 되는 셈이다.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여기에서 마지막 심판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일어나기를 바라는 장면을 그려주고 있다. 그런데 의미심장한 것이 최후의 심판대에서 확인하는 것이 의인됨, 칭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거룩함에 흠이 없음"이다. 하나님께서 거룩함, 다시 말해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순종함을 본다는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칭의로 이미 거룩해진 사람들이 최후의 심판대에서도 여전히 거룩한 상태를 유지하여 칭의를 받아야만 한다는 말이다. 

  살전 5:23은 살전 3:13절과 같은 내용이지만 성도의 거룩함에 대해 더 진보된 강조가 보인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선 성도의 거룩함은 단지 영이나 마음만이 아니다. 존재 전부의 거룩함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전인간적인 전적인 순종이 요구된다. 

 

  바울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칭의와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연결했다. 마지막 칭의 때 확인되는 것은 칭의가 아니라 성화 곧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대한 순종이다. 이로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바울에게 칭의와 성화는 별 개의 실존이 아니다. 칭의와 성화는 병렬적으로 상존하는 것이고, 신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모두에 존재하는 신자의 상황이다. 

 4-2-4.  칭의와 성화 병행어구들

  바울 서신들을 보면 칭의는 성화와 동의어로 서로 병행되는 의미로 사용되는 구절들이 있다. 성화는 거룩하게 됨이다.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순종하여 죄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죄가 없는 사람은 의인으로 칭함을 받는 자이다. 이런 방식으로 성화와 하나님 나라는 상호 교호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울은 고전 6:11에서 성화가 세례 때 이루어진다고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이다. 

  고전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여기에는 씻음과 성화(거룩함)와 칭의(의롭다 하심)가 함께 나온다. 씻음과 칭의가 함께 나옴으로 고전 6:11은 세례를 말하는 것이 명백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신자의 칭의는 세례 때 처음 이루어진다. 그런데 바울은 세례를 통해 칭의와 성화,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순종함이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표현한다. 


  이 구절은 지금 논의되는 논점을 더욱더 확고하게 만들어준다. 칭의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와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와 무관한 칭의는 바울 서신에는 없다.

  로마서 1장과 15장에 걸쳐있는 inclusio와 로마서 1장의 복음에 대한 두 가지 정의 방법, 그리고 롬 10:9의 초대교회의 세례 때 신앙고백문, 그리고 마지막 심판 때의 확인 사항 등은 바울이 로마서에서 칭의를 사용할 때 하나님 나라의 통치라는 거시적인 구조 안에서 구원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것임을 알려준다. 바울은 칭의론을 설명할 때 항상 위에서 살펴본 구조와 문체를 동반했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의 칭의론을 하나님 나라(하나님의 통치) 개념 안에서 이해하게 되고 가르치게 된다. 이것이 칭의론을 바울의 뜻대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것을 무시하고 바울의 칭의를 사용하면 바울은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이상한 가르침들이 교회 안에 만연된다. 그리고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들은 교회가 오해한 말씀으로 인해 꼬여버리게 된다. 


5. 결론과 함의

  간략한 연구를 통해서 다음의 사실들을 관찰해 보았다. 이를 요약하고 간단한 함의를 추가한다. 

  1) 사도 바울의 칭의론을 성경 저자 중심의 해석법을 적용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살펴보았다. 

  칭의론을 사용한 바울만의 독특한 의미와 기능을 무시한 성경 해석법은 다른 성경과의 충돌은 물론 바울 자신의 성경과도 충돌을 일으킨다. 특별한 한 성경 저자의 가르침을 보편화해서 다른 성경 해석에 사용하는 방법은 성경적이지 않고 건전한 해석 방법도 아니다. 


  이를 예로 사도 바울의 칭의로 논증했다. 사도 바울이 사용한 칭의(믿음-칭의 프레임)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이신 예수의 죽음과 부활 후 그 빛에 비추어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새롭게 해석하여 표현한 바울만의 독특한 깨달음(계시)이다. 

 

  믿음, 칭의는 모두 히브리적이고 구약적인 개념이기에 신약 성경 저자들은 자신의 성경에 이것들을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믿음-칭의 프레임은 바울 만의 특색을 가진 가르침으로, 이것이 바울의 믿음-칭의 프레임의 위대한 가치요 그리고 기억해야 할 한계로 보아야만 한다. 이는 모든 성경 저자는 나름 특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 바울 가르침의 고유한 의미와 기능을 복원하고 찾아내는 방법으로 성경 저자 중심의 문체-구조적 해석법을 활용해서 바울의 칭의론의 문체적 구조적 특징을 살펴보았고, 이것으로 바울의 칭의론의 배경과 의미 그리고 적용의 한계를 생각해 보았다. 
  어떤 성경 해석 방법이 올바른 것인가를 물으면 그 성경의 저자가 의도했던 바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100% 올바른 것이라는 사실을 거부할 사람은 아무 없을 것이다. 바울의 칭의론도 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칭의를 논하고 있는 본문들을 가지고 우리는 바울의 집필 의도, 즉 신학적 의도를 찾아야 한다. 즉 저자 중심의 해석을 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성경 저자가 의도했던 뜻과 의미를 찾아내는 방법이 매우 중요하다. 탁월한 방법들이 많이 있겠지만 본 연구에서는 성경 저자의 특색을 파악하기 좋은 도구로 "성경 저자 중심의 문체-구조 해석법"을 사용해서 바울의 칭의를 새롭게 조망해 보았다.

 

  전문적인 신학자들은 다양한 성경 연구 방법들을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아마추어 성경 연구가인 사역자들과 목회자들, 그리고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이것으로 핑계를 삼을 수는 없다. 막연히 성경을 읽을 수는 없다. 보다 전문화된 성경 해석 방법을 익혀야 한다.

 

  교회에는 유행하는 다양한 성경 연구 방법들이 있다. 그것들의 유용성을 인정하지만 단 하나 문제를 삼고싶다. 그것은 거의 대부분이 성경 저자의 문체와 구조에는 무관심한 현대적 논리에서 만들어진 성경 연구 방법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필자가 사용하는 성경 해석법을 소개하고, 이 정도 수준의 성경 해석 방법은 배워서 사용해야 되지 않겠냐고 권면하고 추천해 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