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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대 부흥기 한국 교회가 저지른 어리석음과 그 결과

by 예다준 2023. 12. 28.

80-90년대 부흥기 한국 교회가 저지른 어리석음과 그 결과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기독교세계관에 대한 연구가 개신교 진영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진 일이 있었다. 필자도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아 대학 졸업 논문을 기독교 세계관으로 삼았었다.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연구 붐이 일어난 것은 교회의 부흥이 피크를 이루던 당시 교회 현실에 대한 자성적 반성에서 기인했다. 교회는 엄청나게 부흥하여 우리 이웃 여기저기에 신자들이 있는 것은 물론 정치, 경제, 문화계는 물론 국가 요직에 기독교인들이 대거 포진해서 우리나라에 성경적 정의가 이루어지겠다 상상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세상의 빛과 소금인 기독교인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부조리와 부정은 오히려 증가했고 요직에 있던 신자들이 각종 부정 비리 사건의 주인공으로 보도되는 뉴스가 빈번하게 방송되었다. 한국 교회는 이를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교회의 문제라 생각하고 그 해결책의 하나로 제시한 것이 기독교세계관 정립 운동이었다.

 

  기독교세계관 운동은 지금 한국 교회를 채우고 있는 신자들은 성경적 사고방식, 성경적 삶의 원리를 따르지 않는 자들이 대부분으로 예수께서 명령하신 바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반성을 했다. 쉽게 말하면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달콤한 가르침은 좋아하지만 참으로 예수를 믿는 신자다운 생각과 삶의 원리를 거부하고 세상의 생각, 세상적인 삶의 원리를 따라가는 이른바 병든 신자 또는 세속적인 신자들이 교회에 많다는 자성이다.

 

  당시 교회는 이 지적을 적극 수용하여 많은 목회자들의 설교에 기독교적 세계관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전파되었다. 그 후 30-40년이 지났다. 오늘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과 한국 교회의 대사회적 위상을 돌이켜 보니 당시 한국 교회가 시도했던 한국 교회의 자기반성 운동의 한계와 실수가 보였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는 물론 교회에도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음을 돌이켜 본다.

 

80-90년대 부흥기 한국 교회가 저지른 어리석음과 그 결과

 

 

1. 80-90년대 한국 교회의 자기반성 운동의 중요한 실책

  기독교 세계관 정립이라는 기치로 일어난 당시 한국 교회의 자기반성 운동은 선지자적 외침이었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잃은 것, 특별히 놀라운 양적 부흥의 껍데기에 덮여 가려진 신자들의 벌거벗은 모습을 파헤치려 했던 시도는 한국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데에 너무나 적절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한국 교회의 시야는 좁았다. 그래서 성경적인 기독교 세계관 정립에서 절대로 빠뜨려서는 안 되는 항목 하나를 지나쳐 버렸다. 그것이 30-4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을 괴롭히는 가시처럼 자라나 좁게는 한국 교회의 대 사회적인 영향력을 쫄아들게 만들었고 넓게는 대한민국을 건국의 기초가 된 자유민주주의의 기독교적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

 

  그러면 당시 한국 교회가 간과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기독교 세계관 정립의 대상으로 반성경적이고 반민족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를 포함시키지 못한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현재 정치는 물론 국민들의 정서를 지배하는 북한의 독재전체주의의 이론적인 기초인 주체사상이라는 누룩이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한국 교회는 이 누룩을 기독교 세계관 정립 운동에서 제외시켰고, 그 결과 당시 청년 세대들은 오늘 가장 좌경화, 종북화된 세대가 되었고, 특별히 주체사상의 세례를 받은 종북적인 목회자들이 교회를 십자가 군병들의 진지가 아니라 주체사상의 진지로 만들어 버리게 되었다.

 

  당시 한국교회가 기독교 세계관 정립 운동의 범위를 윤리적인 거룩함에만 국한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운 일이다. 당시 신학교와 목회자들은 사회사상, 특히 정치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교회는 기독교인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주님의 가르침에 정치와 사회사상은 제외하고 윤리적 올바름만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이것은 성경을 이해하는 안목은 물론 역사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한국 교회의 한계였다. 어쨌든 교회는 윤리적으로 거룩한 생각과 삶을 강조하면서 세속적인 생각과 삶의 방식들을 버려야 한다 가르쳤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설교를 채우는 주제들은 물질만능주의, 성공지향주의, 지나친 개인주의 등이 되었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 성경적인 생각을 하고 성경적인 삶을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경이 따르라고 가르치지 않는 세상의 사고방식과 철학, 이데올로기 등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을 믿는다 주장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 일이고 교회를 오염시키는 일이다.

 

  그런데 당시 한국 교회는 종북주의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는 신자가 개인의 신앙과 교회, 그리고 우리나라의 안전을 위해 피해야 하는 세속적인 철학과 사조, 이데올로기임을 깨닫지 못했고 그래서 일언반구도 하지 못했다.

 

 

2. 한국 교회가 종북주의를 간과함으로 생겨난 오늘의 결과

  그러면 당시 한국 교회에는 종북주의자들이 없었는가? 있었다.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누구든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존재감이 분명했다. 그들의 응집된 세력은 종북주의에 물든 신학으로 신학교들과 교회를 시뻘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1970년대부터 종북주의에 물든 한국 신학계에는 공산주의적 관점에서 성경을 연구하고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으로 만든 신학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전파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그 신학을 진보주의 또는 자유주의 신학이라 정의하고 보수주의 신학과 결이 다른 신학이라 가르쳤다. 그 사이 종북주의적 신학은 곪을 대로 곪아 신학 분야에서는 물론 실제 정치적인 사건으로 침투해서 상상을 초월한 결과들을 만들어 내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문익환 목사의 방북사건이다. 종북주의 신학자이자 목회자의 대부격이라 할 수 있는 문익환 목사는 남한을 대표한다는 명목으로 불법 월북하여 김일성을 만나 찬양하고 북한이 주장하는 남북연방제 통일에 대해 상의하고 돌아와 당당하게 체포되는 과감하고 강력한 행동력을 발휘했다.

 

1989년 방북 당시 김일성 북한 주석을 만난 문익환(사진 오른쪽) 목사. 사진=사단법인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1989년 방북 당시 김일성 북한 주석을 만난 문익환(사진 오른쪽) 목사. 사진=사단법인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종북주의에 물든 신학교의 부패는 상상 이상이었다. 종북주사파적 신학에 물든 신학교는 당시 종북주사파 운동권의 이론적인 토대를 만들어주는 일을 담당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 한호석을 들 수 있다.

 

  한호석은 운동권의 흐름이 PD(People’s Democracy, 민중민주)에서 NL(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 즉 종북주사파로의 대전환을 선포한 ‘군자산의 약속’이 채결될 때 ‘조·미 관계 10년을 통해 본 한반도의 통일 정세’를 발표해서 오늘날 운동권에게 이론적인 토대는 물론 로드맵을 제시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다.

 

 

  종북사상이 신학교와 신학생들과 목사들의 마음을 휩쓸자 그 여파로 일반 개교회에는 기가 막힌 현상이 있었다. 당시 어떤 교단의 교회에서는 주일 예배를 드리고 교인들이 모두 동원되어 데모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 결과 기독교인이면서 북한의 전체주의를 신봉하는 세대가 만들어졌고, 특히 종북적 사상에 세뇌된 목사들이 양성되어 교회를 종북주사파의 활동 거점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교단이나 각종 기독교 단체, 사회단체 간판을 달고 북한의 가르침을 옹호하고 주장하는 친북활동을 지금도 계속해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금만 더 살펴보자.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의 이른바 86세대와 97세대는 오늘날 40-50대로 어느 세대보다 가장 종북적인 성향이 강하다. 그리고 이때 종북주사파 이데올로기의 세례를 받아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종북적 이데올로기를 가르치는 죄파적 목사들이 가장 많은 세대이다.

 

  특히 1990년대는 한국 사회의 고도의 발전과 정치적 안정, 공산주의의 종주국 소련의 붕괴로 좌파 운동의 터전이 사라진 시대였다. 그래서 당시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서울 중심의 86 운동권의 세력이 점차 시들해져 갔다. 이때 86운동권로부터 열외를 당하고 있었던 지방 중심의 97 운동권 세력들은 운동권의 헤게모니를 쟁취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이전 86 운동권보다 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였는데, 그것이 NL 운동권이 신봉하는 북한의 주체사상이다.

 

  이후 86 운동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주체사상이 대학가 운동권을 휩쓸었고, 특히 신학교에 침투해서 각종 좌경신학으로 연구 발표되고 변종 공산주의인 주체사상으로 신학을 연구하는 교수들로부터 주체사상으로 성경을 읽고 목회하는 목회자들이 배출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주체사상이라는 세속적인 정치 이데올로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치고 당시 젊은이들과 목회 후보자들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해 아무런 방지책을 내놓지 못했다.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주장하면서 이미 교회 청년들과 목회자 후보생들의 세계관을 잠식하고 있던 종북주사파의 누룩을 간과한 일이다.

 

  그 결과 지금 한국 사회의 30-40% 정도의 국민이 종북주사파적 정치인들을 지지하고, 교단마다 종북적 가르침을 전하는 목회자들이 노골적으로 북한을 추종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종북주사파를 신봉하는 목사들이 교단과 각 지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주사파적 신념을 가르치고 연대 세력을 만들어 교회를 더욱더 주사파를 위한 견고한 진지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문재인 정권을 통해 이미 많은 주사파가 우리나라의 각종 요직에 자리를 잡고 진지전을 펼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시작되면서 종북주사파들의 진지가 하나둘씩 파괴되는 양상이 일어나고 있다. 방송 문화계에서의 종북주사파의 진지가 파괴되고 있으며, 노동계와 법조계에서도 동일한 진지 파괴 작전이 수행 중이다.

 

  염려가 되는 것은 종북좌파의 진지로 마지막까지 남아 결사 항쟁을 할 진지가 종교계, 특히 개신교에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이다. 예전부터 종교계는 정치 세력으로부터 어느 정도 치외법권 지역 같은 혜택을 누렸다. 정치권력이 종교를 건드리는 일은 득 보다 실이 많다. 게다가 한국 교회가 교회 안에 잠입한 종북주사파에 대한 경계심이 부족하다면 정부가 교회 안에 만들어진 종북주사파의 진지를 척결하는 일은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면 교회는 종북주사파들이 암약하는 최후의 보루가 될 수 있겠다는 염려가 앞선다.

 

 

2. 주체사상은 사도 바울이 언급한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세속적인 견고한 진이다

  사도 바울은 고후 10:4-5에서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높아져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준다. 특별히 그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적하는 생각들을 꼬집어 설명했는데, 이것들이 기독교적 세계관 정립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이 세상에 속한 이론, 철학, 사상, 이데올로기 등이다.

 

  바울은 이것들을 한 마디로 “견고한 진”이라 정의했다. 견고한 진이라는 단어는 군사 용어이다. 주요한 거점에 터를 잡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전파를 방어하는 사단의 영적 방어 수단이다.

 

  고후 10:4-5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바울은 이것들과 싸워야 한다고 말했고, 이 견고한 진들을 파해서 생각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켜야 한다고 전략을 설명해 주었다.

 

  바울이 말한 견고한 진은 바울 당시 복음 전파를 방해하고 헷갈리게 만들었던 세상적인 철학과 사상, 이데올로기, 종교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새로운 견고한 진이 나타나 지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대적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주체사상에 물든 종북좌파적 사고방식이다.

 

  종북좌파적 사고방식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대적하는 견고한 진임은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어 굳이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오늘 우리 앞에 설치고 다니는 종북좌파들의 행태는 성경이 금하는 악행들과 같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을 일삼는 태도, 거짓이 드러나도 뻔뻔하게 버티며 진리를 왜곡하는 교만함, 죄에 대해 부끄러움을 모르는 완고한 마음, 다른 사람의 잘못은 심판하고 자신의 잘못을 옹호하는 내로남불, 함정을 만들어 빠뜨리려 모략과 협잡하는 모습... 이것들은 성경이 죄악이라 너무나 많이 지적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사항이다. 주체사상은 성경이 가르치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반 성경적 세계관이다.

 

  주체사상(주체사상의 뿌리인 공산주의 사상을 포함해서)은 ‘사회진화론’이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어도 인간의 힘으로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다고 보는 세계관이다. 그래서 주체사상의 인간론은 매우 긍정적이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는 긍정적인 존재이다.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는 주체사상의 인간은 인간 사회를 리드할 수 있는 소수의 리더(주체사상에서는 수령이다)에 의해 사회적(전체적) 진화가 가능하다 믿는다. 그래서 주체사상은 전체주의이고, 사회진화론이다.

 

  이러한 세계관 프레임은 성경의 가르침과 완전히 반대다. 성경은 인간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고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유토피아를 만들어 구원할 수 없는 죄인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마치 바벨탑과 같이 인간 사회는 아무리 발달하고 문명이 고도화되어도 진화가 아니라 퇴보하여 유토피아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 자리에 이를 것이라 가르친다.

 

  더군다나 인간이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서 어떤 인간이나 인간의 리더들을 의지하는 것도 기독교적 세계관의 프레임이 아닌 우상숭배이다. 유토피아 건설은 기독교적 개념으로 바꾸면 구원이다. 인간의 구원은 인간 세계 밖에서 오시는 구원자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그분의 오심과 구원을 믿는 것이 성경적인 믿음이다.

 

  이것이 성경의 세계관과 주체사상의 세계관의 근본적인 차이다. 성경의 세계관에서 보면 주체사상은 완전 반대쪽에 있는 세속적인 사상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두 세계관은 완전히 반대이기 때문에 서로 융합도 병존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면서 주체사상을 따르는 사람은 두 가지 중 하나로 봐야 한다. 먼저는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두 번째는 두 가지 세계관에 대해 무지해서 혼돈 상태에 있는 것이다. 필자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신자라 말하면서 종북주의적인 일반 신자들은 기독교 신앙도 종북주의도 잘 모르고 선택적으로 혼합된 상태라고 생각한다. 참 그리스도인이라도 성경적인 세계관이 부실하면 종북사상의 일부를 따를 수 있다.

 

  문제는 목사들이다. 목회자이면서 주체사상을 따르는 자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생각한다. 그들의 마음에 진정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고, 성경의 세계관을 안다면 주체사상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마음으로 기독교의 껍데기를 쓰지 않았을까 염려한다.

 

  게다가 북한의 주체사상은 성경을 도용하여 만들어진 유사 종교 체계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다. 이는 주체사상을 이론화한 자들이 고백한 사실이다. 하나님의 자리에 수령을 놓고 인간을 신격화하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북한의 주체사상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주체사상은 바울 당시 황제 숭배 사상과 맥을 같이하는 이단 사설이다.

 

 

  그러므로 참 신자라면 거짓말을 삼가고, 악한 생각과 행동을 금지하는 것과 같이 북한의 주체사상을 배격해야 옳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기독교인이 종북주사파 운동을 따르며 북한에 대해 온건한 입장을 가진 목회자가 될 수 있는가?

 

 

3. 종북주사파 목사들이 거룩한 믿음과 성경, 그리고 교회를 이용하고 있다.

  얼마 전 종북적 언론 매체가 종북주사파 목사와 협잡해서 김건희 여사를 속이고 몰래카메라를 찍어 발표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서 김건희 여사를 속여 몰카를 찍은 최재영 목사는 대표적인 종북주사파 목사이다. 그의 약력을 보면 가장 보수적인 교단으로 알려진 장로교 합동 측 출신이라 경악할만하다.

 

  그 목사는 “북한은 종교의 자유가 있으며 종교를 탄압하지도 권장하지도 않는다. 북한은 기독교를 주체사상과 접목해 고유한 민족종교로 정착시킨 유일한 나라”라는 평했다. 그러면서 그는 남한의 교회는 미국식 기독교에 찌든 타락한 교회요 북한의 교회는 민족주의적 기독교로 참 교회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가 그는 예수의 지상명령을 조국통일로 이해하는 것이 교리적 도그마를 걷어낸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해석이라 말했다.

 

  이로서 종북주사파 목사들이 주체사상의 눈으로 얼마나 황당하게 성경을 해석하고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의 생각들의 접목을 허락하지 않는다. 기독교를 민족 종교로 만들라 가르친 성경이 어디에 있는가? 에수님의 지상 명령이 어째서 조국통일과 같은가?

 

  주체사상이라는 필터가 있지 않고는 그 누구도 이런 성경 해석과 교회론을 말할 수가 없다.

 

 

 

  한국 교회가 당면한 문제 중 가장 그늘에 가려졌던 것이 종북주사파의 암약과 활동이다. 만약에 80-90년대에 한국 교회가 종북주사파를 한국 교회에서 척결해야 할 것으로 인식했다면 오늘날 종북좌파를 지지하는 국민들의 숫자는 상당히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요직에 있는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종북주의를 거부했다면 문재인과 이재명 같이 우리나라의 정치와 안녕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 기독교인은 생겨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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