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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할 수 있는 성경 해석 가이드

누구나 할 수 있는 성경 해석 : 성경에는 두 개의 입이 있다

by 예다준 2023. 11. 30.

누구나 할 수 있는 성경 해석 : 성경에는 두 개의 입이 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성도들에게 신앙생활의 어려운 점을 집으라하면 성경을 읽기를 많이 지적한다. 그래서 다른 것은 열심히 잘하는데 성경 읽기에서 좌절하는 성도들이 많다.

  즐겁게 예배를 드리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하고 직분도 잘 감당하지만 성경을 몇 독했다는 신참의 감격 어린 간증을 듣게 되면 은혜보다는 나도 몰래 쥐구멍을 찾는 신자들이 많다. 여러분은 그런 경험이 없는가? 사실 성경 읽기로 자신의 소명을 의심했던 경험이 있는 목회자들도 많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성경 해석 가이드 1 성경에는 두 개의 입이 있다

 

1. TV 드라마나 영화를 문제없이 시청할 수 있으면 누구나 성경 해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신자가 성경을 가지고 고민해야 할 정당한 고민은 성경을 몇 독했냐 보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생생하게 캐치하는가? 말씀으로 삶의 문제들을 얼마나 능숙하게 풀어가는가?라는 질문에 있다.

 

  성경의 교훈을 잘 파악해서 삶에 잘 적용하기 위해 교회는 다독을 권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 다독보다 성경을 삶에 잘 적용하는 것이 더 어렵게 때문에 그나마 쉬운 다독을 강조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상황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삶에 잘 적용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이해하고, 이해한 성경의 가르침을 나에게 적용하는 해석을 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성경에는 “백번 읽으면 저절로 그 뜻을 알게 된다”라는 옛사람들의 가르침이 잘 적용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배우거나 연구하지 않으면 그 뜻을 명확하게 알 수 없는 부분이 성경에는 엄연히 존재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대부분의 신자들이 낙망의 벼랑 끝에 서지만 교회는 특별한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교회와 목회자는 다독 이상을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뒤집어 생각하면 새롭다. 백번 읽어도 저절로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 성경에 있다면 그것들을 해석하는 방법만 알면 한 두 번으로 백 번의 효과를 터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성경 해석 방법을 터득하고 10독, 100독을 이어간다면, 마치 비포장 시골길을 달리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과 같은 영적인 속도감과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전문적으로 성경 해석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약간만 배우면 얼마든지 성경을 혼자의 힘으로 해석할 수 있다. TV 드라마 시청이나 영화 관람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경을 잘 읽을 수 있다. 말과 글 사용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능하다.

 

  우리말과 TV 드라마나 영화에 사용되는 다양한 기법들을 이해할 수 있으면, 성경 이야기를 마치 TV 드라마나 다큐를 보는 것처럼 부담 없고 생생하게 머릿속에 이해되고 의미를 발견하여 적용할 수 있다.

 

 

2. 누구나 할 수 있는 성경 해석의 기초 : 성경에는 두 개의 입이 있다

  한번 이런 상상을 해보자. 연령과 학력에 관계없이 뽑힌 50명이 지금 당신 앞에 있다. 그들의 책상 위에는 필기도구, 편지지와 편지 봉투가 있다. 지금부터 10분 동안 주제에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라고 했다. 10분 후, 한 사람씩 자신의 편지를 공개한다. 그러면 우리는 아래와 같은 가장 일반적인 공통점이 모든 사람의 편지 속에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 여는 말 - 수신자, 인사말

  2. 감사 또는 축복의 말 - 도입문

  3. 몸 말 - 전할 소식이나 주장, 또는 권면 등

  4. 닫는 말 - 문안 인사, 축복, 날짜, 발신자

 

  이 형식에서 벗어난 편지는 아마 없을 것이다. 만약에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편지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가? 형식이 틀리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편지라 기록했다 하더라도 우린 편지라고 취급해 주질 않는다. 다른 형식, 다른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생각과 말과 글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을 읽어보라! 이것이 편지인가? 설사 모세가 편지로 기록했다 해도 우린 편지로 읽을 수 없다. 우리말(글)의 법칙이 그러해서이다. 그런데 베드로전서를 보라! 우린 첫 줄을 읽자마자, 머릿속에 “이것은 베드로 사도께서 아시아의 교회들에게 쓴 편지구나”라는 생각으로 성경을 읽어 나간다. 글의 구조가 독서의 전략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글의 구조는 언어의 법칙에서 나온다. 법칙이 없는 언어는 언어로 기능할 수 없는 것처럼, 글에 일정한 구조들을 만들어 내지 않는 언어는 실제로 언어라 말할 수 없다. 언어는 반드시 법칙을 가지고 있으며, 이 법칙이 글에 일정한 구조를 만든다.

 

  성경은 사람의 언어로 기록되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러한 언어의 법칙이 만들어낸 구조를 피할 수 없도록 기록되었다. 성경은 언어의 법칙들이 만들어 낸 글의 구조를 아주 능수 능란하게 사용한 걸작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2000년 전에 기록된 바울 서신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 당시인들과 동일한 감각에서 바울 서신이 편지라는 글의 구조를 아주 쉽게 발견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언어 법칙과 우리의 언어 법칙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우리말의 법칙을 잘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말해서 TV 드라마나 뉴스나 토크쇼 등을 보는 데 아마 이상이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올바르고 탁월한 성경 이해를 위한 흔들리지 않는 다리 하나를 이미 가지고 있는 셈이 된다.

 

  1) 016 모르면 원시인!

 

  “016 모르면 원시인!”

 

  이 문구 기억할지 모르겠다. 30년 전 이 문구에 꽂혀서 부모님에게 욕을 엄청 먹으면서 016 번호 핸드폰을 구입하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닌 일이 있었다.

 

  이것은 원시인에 대해서 알려주는 글이 아니다. 나는 이것이 광고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원시인이란 단어에는 상품 구매에 강력한 충동을 부여하기 위한 카피라이터의 과장법이 깃들여 있음도 잘 안다. 이것이 광고문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문구를 보고 고고학적 이해를 한 것이 아니라 핸드폰 가게로 간 것이다. 글의 형식에 대한 선판단이 이미 나의 이해의 전략을 설정해 준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이 글이 광고라는 사실, 즉 글의 구조를 모르고 이 문구를 대한다면 어떤 이해가 생겨날 수 있을까?

 

  2)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징역 3년형을 선고받으면서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과 관련해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징역 3년형을 선고받으면서, 친명(친이재명) 돌격대로 불리던 강경파 모임인 ‘처럼회(국회 공정사회포럼)’가 풍비박산의 위기에 처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각종 구설에 휩싸인 처럼회 소속 의원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 글을 읽자마자 당신에겐 어떤 독서 전략이 떠오르는가? 위의 것에서와 같이 과장법을 주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가? 아니면 어떤 사건과 사건의 진행에 대해 세밀한 파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는가? 위의 것은 깜찍하고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보이는 반면에 이 글은 사실적이고 객관적이라는 느낌이 직감적으로 든다. 어떤 사건의 심각성을 파헤치려는 분위기 때문인지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할 것같이 느껴진다. 왜냐하면 이것은 정치적인 논쟁거리를 만들었던 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를 보도한 뉴스이기 때문이다.

 

  뉴스 기사에 문학적인 과장법이나 근거 없이 감성을 자극하는 추측이 실려 있으면 문제가 발생하고 쇠고랑을 찰 수도 있다. 하지만 “016 모르면 원시인!”은 그런 부담을 전혀 주질 않는다. 왜 그런가? 현재 우리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법칙과 그 법칙이 만들어낸 글의 구조에 따라 쓰임새는 물론 글이 만들어내는 결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3) “여성공채” 아기 그림 본뜨고 색칠 25-45세

 

  “여성공채” 아기 그림 본뜨고 색칠 25-45세.

 

  모 벼룩시장에서 발췌한 글이다. 이 글을 읽는 우리는 무엇보다도 취업 정보 획득에 우선 관심을 가진다. 만약 이 글을 가지고 문학적 감상을 꾀한다면, 그의 이해의 전략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찾지 못할 것이다.

 

  이상의 예문들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나?

  글은 두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하나는 내용(스토리)이요, 또 하나는 글의 구조이다. 글에는 두 입이 있다. 내용으로 말하고, 내용 이해를 위한 전략으로(구조) 또 한 번 말한다. 마찬가지로 성경에도 두 개의 입이 있다. 성경의 첫 번째 입의 스토리를 듣고 두 번째 입인 구조를 찾는 것이 성경을 가장 가성비 있고 올바르게 읽는 방법이다. 바로 이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성경 해석의 첫 발걸음이다.

 

 

3. 누구나 성경을 해석하는 신자가 될 수 있다!

  이제 우린 성경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두 가지 지름길, 성경 해석을 할 수 있는 비법을 알게 되었다. 성경의 내용과 구조를 파악하라!

 

  “016 모르면 원시인!” 대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성경의 내용과 구조 모르면 원시인!”

 

  사도 바울은 롬 12:2에서 말세를 사는 성도의 올바른 삶에 대해 이렇게 권면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기에는 성경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너희는” 다음에 “성경으로”라는 말은 넣으면 진짜 성경 읽기, 진짜 성경 해석하기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을 올바로 읽은 사람은 말씀으로 마음이 새롭게 된 사람이다. 그는 성경 말씀이 내재화되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세상의 철학이나 가치관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다.

 

  이런 신자가 되려면 성경 말씀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성경 말씀을 이해하고 적용하기 위해서는 해석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성경 해석에 대해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았어도 누구나 어느 정도 성경 해석을 할 수 있다. 이런 희망으로 본 블로그에는 누구나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방법과 결과물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공유하고 있다.

 

  물론 목회자나 설교자들을 돕기 위해 어려운 내용의 글도 있다. 하지만 평신도를 위한 글도 있으니 성경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에게 선하게 쓰였으면 하는 바램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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