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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주석이 만들고 싶어지는 성경 해석 연습/창세기

노아 시대 사람들의 죄악(창 6:1-7) 성적 타락이 전부일까?

by 예다준 2023. 11. 29.

노아 시대 사람들의 죄악(창 6:1-7) 성적 타락이 전부일까?

 

 

  창세기 6장 특히 1-7절은 기록된 지 3천 년이 지난 지금도 합의된 해석이 없는 레벨 탑의 난해구절이다. 공정하게 말하면 이 부분에 대해 교회에서 들은 가르침은 많은 해석 중 하나가 전통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래서 다른 해석의 장은 얼마든지 열려있고, 다른 해석이 나왔을 때 무엇이 성경 본문과 성경 저자의 의도 에 보다 더 부합한 것인가를 진지하게 토론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그래서 노아 홍수 전 사람들의 죄악 된 모습이 기록된 성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해 본다. 이 해석은 이제까지 알고 있는 해석들의 단점을 보완하고 보다 성경 본문을 잘 드러내는 방법이라 생각된다.

 

노아 시대 사람들의 죄악(창 6:1-7) 성적 타락이 전부일까?

 

 

 

 

1. 노아 시대 사람들의 죄악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으로 제기되는 문제점들

  창세기 6:1-7은 노아 홍수 전 사람들의 죄악상을 다루는 말씀이다. 해석상의 이견이 많은 이 부분에 대해 전통적인 한국 교회의 해석 중 전반적으로 일치하는 것이 하나 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누군지는 논란이 많아 미지수이지만, 어쨌든 누군지 잘 모르는 하나님의 사람들과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의 딸들 사이에 성적인 타락이 만연했다는 해석이다.

 

  이에 더하여 하나님이 아담 부부에게 정해주신 일부일처제가 이들의 성적 타락으로 깨지고 일부다처제가 되었고, 성적인 착취와 강포가 동반된 성적 문란이 세상에 가득하게 되었다는 것도 포함된다.

 

  하지만 이 해석은 다른 본문에 의해서 해결하기 어려운 합리적인 반대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1) 왜 창세기 저자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성적 타락과 강포(폭력)를 대조해 놓았을까?

  창세기 6장을 살펴보면 홍수 전 사람들의 타락상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1-2절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좋아하는 대로 취한 성적 타락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11-13절에 나오는 강포(폭력)의 땅에 충만이다.

 

  창 6:1-2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창 6:11-13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전통적인 해석은 두 표현을 종합해서 하나님의 아들들의 성적 문란과 타락이 사람의 딸들에게 성적인 폭력을 행한 것으로 본다. 그런데 이런 해석은 바로 앞뒤에 있는 다른 성경 본문과 매끄럽게 어울리지 않는다.

 

  - 우선 1-2절의 성적 타락이 11-13절의 강포(폭력)과 무엇때문에 대등한 표현으로 병행되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성적 타락이나 성적 방종은 분명히 폭력의 만연과 다르다.

 

  특별히 6:1-2을 성적 타락이나 방종으로 보는 견해는 마 24:37-39에 예수님께서 노아 시대에 대해 설명한 것에 근거를 둔 이해이다. 

 

  마 24:37-39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라는 예수님의 표현은 노아 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성적으로 타락했고 방종한 삶을 살았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표현에는 폭력은 나오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성적인 방종이라 하면 도덕성이 무너져서 성적인 일탈을 자기 맘대로 무절제하게 하는 것이라 우리는 생각한다. 억지로 강압에 의헤서 하는 행위를 방종이라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창세기 저자가 1-2절의 표현과 11-13절의 표현을 병행해서 사용한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 또, 노아 홍수 이전 사람들의 타락상을 설명한 또 다른 구절인 6:5과도 충돌된다. 이 구절을 보면 사람들의 딸들을 폭력적인 성적 타락으로 유린한 하나님의 아들들은 물론 사람의 딸들도 모두 죄를 범해 타락한 것으로 묘사한다.

 

  창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전통적인 해석 방법으로 앞의 두 성경(6:1-2, 6:11-13)을 보면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들은 성폭력과 성착취의 가해자요 사람의 딸들은 피해자이다. 그런데 6:5을 보면 둘 다(심지어 모든 사람이) 범죄자로 나와 하나님의 아들들이 범죄의 주동자로 표현된 두 구절의 설명과 어울리지 않는다.

 

  2) 왜 하나님의 아들들의 죄악이 모든 사람의 심판이 되는가?

  6:1-2과 11-13절의 타락상을 6:5이 모든 혈육이 있는 자의 패괴함으로 설명하는 것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폭력적인 성착취로 결혼한 사람의 딸들도 부정한 마음으로 결혼을 해서 모두 죄를 범했다고 치더라도 이를 가지고 모든 혈육이 있는 자가(또는 온 땅이) 패괴했다는 말은 너무나 지나친 과장법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당시 모든 일반 남성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고, 또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의 모든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성경의 표현은 지나친 과정법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표현은 과장법이 아니다. 이것 때문에 노아 식구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홍수 심판으로 실제로 죽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성적 타락에 해당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심판은 대단히 억울한 판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3)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결혼으로 네피림이 태어났다?

  앞의 두 가지 어색한 점을 어느 정도 보완해 주는 해석은 하나님의 아들들은 신자(즉 셋의 후손들)를 의미하고 사람의 딸들은 불신자(가인의 후손들)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해석이다.

 

  이 해석은 인류를 신자와 불신자로, 신자와 불신자의 결혼을 성적인 타락으로 일반화시킬 수 있어 위 두 가지 의문을 잠재울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보수적인 전통을 가진 교회에서 취하는 해석이 이것이다.

 

  하지만 이 해석은 6:4에서 걸린다.

 

  창 6:4 “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신자와 불신자의 결혼으로 네피림(거인)이 탄생했다는 말은 쉽게 납득되지 않고, 설사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의 결혼으로 네피림이 태어났다 하더라도 네피림이 계속해서 탄생한 것을 이해되는 표현(“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 자식을 낳았으니”)은 설명하기 더 어렵다.

 

  또한 네피림이 용사로 유명한 사람이었다는 말은 현대인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결혼 조건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신자와 불신자의 결혼을 오히려 권장하는 말씀으로 적용될 수 있다.

 

  이상의 세 가지 질문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결혼을 성적인 착취와 강압으로 해석할 때 당면하게 되는 문제 중 일부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결혼을 타락한 성적인 욕망에 의한 결혼과 성적 착취로 해석하는 것은 성경 저자의 다른 표현들과 깔끔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해석이라는 말이다.

 

 

 

2. 노아 시대 사람들의 죄악에 대한 다른 해석을 지지하는 창세기 저자의 표현들

  자신의 글을 모순되게 기록하는 저자는 없다. 정상적인 저자라면 모두가 독자들이 자신의 글을 보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다른 이해를 하지 않도록 글을 쓴다. 창세기의 저자도 동일하게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전제하면,  우리가 보기에 모순으로 충돌하는 창세기 말씀은 본문의 문제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해석에 문제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라 보는 것이 정당하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질문이 있다. 만약에 창세기 본문에 전통적인 해석 말고 다른 해석을 지지하는 표현들이 있다면 어떨까?

 

  1) 하와와 하나님의 아들들이 연결되는 “보다 – 아름다운 – 취하다” 프레임

  이 질문에 해답을 줄 수 있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들이 있고 이것들을 퍼즐 맞추듯이 잘 맞추면 새로운 해석의 문이 열린다.

 

  그중 하나를 소개한다. 그것은 창세기 3장에서 하와가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과 노아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다 – 아름답다 – 취하다” 프레임이다.

 

  학자들은 창세기 3장에 표현된 하와의 행동과 6장에 표현된 하나님의 아들들의 행동을 묘사한 창세기 저자의 표현에 공통적인 프레임이 있고 이를 토대로 두 사건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고 창세기 6장은 창세기 3장을 암시하는, 또는 연속성이 있는 사건이라 해석한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취한 것이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아름답게 여겨 취한 것의 복사판이라는 해석이다.

 

  이는 두 구절을 비교해 보면 금방 확인 가능하다.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보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아름다운)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취하다)

  창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아름다운)보고(보다)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취하다)

 

  두 구절의 표현은 반복되는 단어로 만들어지는 “보다 – 아름다운 – 취하다”프레임으로 같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심판”이 같다.

 

  이 프레임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범죄를 성적인 타락이 아니라 하와의 범죄와 연결해서 해석해야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우리를 이끌어준다 할 수 있다.

 

  2) 네피림에 대한 강조 : 계속적인 용사의 탄생

  앞의 문제제기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한 것이 강포를 행함으로 달리 표현된 것이 부자연스럽고, 노아시대 당시인들 모두가 타락한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지나친 것이라 했다. 게다가 이들의 결혼으로 당대의 용사, 유명인, 거인(네피림)이 언급되는 것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전통적인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본문에 나오는 네피림을 성경 해석에 걸림돌이라 여겨서 등한시 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창세기 저자는 오늘 우리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결혼 앞과 뒤에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 두 표현(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와 "그들이 용사라 고대의 유명한 사람이었더라")을 연속 사용하여 네피림의 존재를 오히려 강조했다.

 

  창 6:4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일단의 학자들은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라는 문장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문장의 흐름을 방해하는 어색한 표현이라 보고 후대에 억지로 삽입된 것이니 괄호 취급하듯 할 수 있다 평가한다. 그래서 이들은 네피림과 이어지는 고대의 용사를 전혀 다른 존재로 본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글을 가능하면 자연스럽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려 한다. 그런데도 문맥을 방해하는 문장을 억지로 끼워 넣는 일은 그 문장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을 때 감행한다. 그렇다면 어색하다고 판단되는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는 창세기 저자의 의도적인 강조법으로도 볼 수 있다.

 

  게다가 창세기 저자는 “당시”와 “그 후에”라는 시간적인 표현을 사용해서 어색하게 보이는 두 문장을 연결해주었다. 비록 부정확하여 특정 시기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당시부터 그 후에까지”라는 식의 특정 행동이 계속해서 연속되는 표현으로 창세기 저자는 네피림과 고대 용사를 서로 연결했다. 그러면 우리는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를 어색하다고 괄호처리 해서는 안된다.

 

  이상의 두 가지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한 행동은 성적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의 성적 방종과 타락보다 하와의 범죄 사건과 연루된 것으로 표현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결혼을 성적 타락을 위한 행동보다 네피림을 계속해서 생산하기 위한  행동으로 기록했다고 한다면 잠정적으로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정리할 수 있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고대의 유명한 용사요 거인인 네피림을 계속해서 생산하기 위해서 사람의 딸들을 취했다. 그리고 이 행동은 하와가 범죄를 저지른 행동과 연관된 행동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왜 네피림을 생산하려 했을까? 자신과 자신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세상을 다스리기 원했기 때문이다. 강포를 맘대로 휘두를 수 있는 자신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네피림을 계속해서 생산하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들의 행동은 사람의 딸들이 환영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세상을 다스리는 용사의 어미가 되어 강포를 휘두르며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함께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세기 저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는 것(6:2)과 혈육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강포를 휘두르는 것(6:13)을 동등하게 대조한 것이고, 온 땅이 패괴해지고(6:12), 세상 모든 사람의 죄악이 온 세상에 관영해졌고 모든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6:5)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죄를 범한 하와와 가인의 비참한 모습 : 다스리기를 사모하는 형벌

  위 두 가지 가정을 토대로 하와의 범죄가 만들어낸 형벌을 연결해 보면 재미있는 가설이 만들어진다. 앞에서 “보다 – 아름다운 – 취하다” 프레임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들의 범죄가 하와의 범죄와 행동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이것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해석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달들을 취한 것을 성적 타락이나 방종보다 세상을 다스리려는 목적으로 행했다 가설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하와에게 하나님의 아들들이 가지고 있었던 범죄의 목적인 '다스림'이 있다고 한다면 창세기 저자가 하와와 하나님의 아들들을 동일한 문학적 프레임으로 연결했다는 가설이 보다 확고해진다.

 

  놀라운 사실은 그것이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다. 창 3:16이다. 

 

  창 3:16 후반절은 전통적으로 범죄 한 하와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형벌이라 이해되는 말씀이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학자들은 이 구절에 숨겨진 히브리인의 생략법을 감안하면 하와가 범죄를 시도한 의도도 발견할 수 있다 말한다.

 

  달리 말해서 창 3:16 후반절은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범죄를 저지른 이유와 함께 그에 상응한 형벌을 알려주는 말씀이라는 해석이다.

 

  창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6 후반절 말씀은 대부분의 교회에서 남성에게 불평등과 착취를 당하는 여성의 모습이 하와의 범죄로 인해 빗어진 형벌로 이해한다. 여성은 남성을 사모하지만 남성은 여성을 다스리는 관계의 불균형을 불평등과 착취로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 구절에는 히브리인의 생략법이 있고, 이를 감안하면 문장의 내용이 우리가 보고 있는 번역본과 다소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이는 창 3:16 후반절의 문장 구조가 하나님께서 범죄를 저지른 가인의 정체를 분석한 창 4:7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착안된 것으로 다음과 같다.

 

  창 3:16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테슈카)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마샬) 하시고”

  창 4:7 “죄의 소원(테슈카)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마샬)

 

  가인의 범죄를 설명하는 창 4:7을 완전한 문장으로 복원하면 아래와 같다.

  “죄가 가인을 [다스리기를] 사모하나(테슈카), 가인이 죄를 다스리도록(마샬) [사모할찌니라].”

 

  이 문장에서 [다스리기를]과 [사모할찌니라]가 생략되어 표현된 것이 현재 창 4:7 문장이다. 이를 기초로 4:7과 3:16 두 문장의 구조가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에 3:16 문장에도 생략법이 적용되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3:16을 완전한 문장으로 복원하면 이렇다.

 

  “너는 남편을 [다스리기를] 사모하고(테슈카), 남편은 너를 다스리기를(마샬) [사모하리라].”

 

  복원된 구절은 우리에게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먼저는 하와의 범죄를 하나님께서는 다스림의 문제로 해석하셨다는 점이다. 그래서 하와는 범죄의 결과로 다스림의 역전을 당하게 된다. 

 

  두번째는 하와가 아담을 제치고 선악과를 따먹은 행동을 했던 이유도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부분은 명백하지는 않다. 하와는 남편 아담을 다스리기 위해서 하나님처럼 되려는 범죄를 시도했거나 뱀의 유혹대로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되면 아담을 다스리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실제로 이 부분을 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질문을 했을 것이다. 뱀은 무엇 때문에 아담이 아니라 하와를 꼬셨을까? 하와는 뱀의 꼬임에 아담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했을까? 또 아담은 왜 하와가 하라고 한다고 악한 행위를 따라 했을까? 지금 제시한 해석은 이 질문들에 대해 하나의 팁을 제공해준다.

 

  실제로 아담과 하와의 범죄 현장을 보면 하와가 주도적이고 아담은 종속적이다. 이때 하와는 분명히 아담을 다스렸다. 설사 하와에게 아담을 다스리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다스림에 반역하는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와의 범죄의 결과가 다스림으로 설명된 것이다.

 

  하지만 하와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만들어진다. 하와는 아담을 다스리기를 사모했지만 오히려 아담이 하와를 다스리기를 사모하게 되는 대역전이 범죄에 대한 형벌로 시작된다.

 

  하와는 본래 아담의 “돕는 베필”로 지음 받았다. 여기에서 돕는 베필이란 용어는 자신은 타인의 도움이 필요 없는 완벽한 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는 “알맞은 헬퍼”(suitable helper)라는 의미이다. 아담은 하와를 보자마자 자기 자신과 같다 인식했다(창 2:23).

 

  창 2: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우리는 가족을 피를 나누었다고 표현하는데, 히브리인들은 뼈와 살을 나누었다고 표현한다. 아담의 고백은 하와를 완전히 자기 자신과 같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의 관계는 완전히 동등한 관계였다. 그러나 하와의 범죄로 두 사람의 관계가 주도와 종속, 지배와 피지배, 다스림과 다스림을 받는 관계로 왜곡되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발견사항은 하와의 범죄가 다스림이었고,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결혼이 다스림으로 서로 같다는 점이다. 그래서 창세기 저자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행동을 하와와 같은 패턴을 가진  “보다 – 아름답다 – 취하다” 프레임으로 표현한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범죄는 하와의 범죄의 복사본이다. 이들의 범죄는 맥락이 같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고 다스리는 자의 권세를 차지하고 계속해서 누리겠다는 마음이 범죄의 동기로 같다. 

 

3. 결론 : 노아 시대 사람들의 죄악에 대한 새로운 해석

  하와는 아담을 하나님의 다스리는 권세를 탐하는 마음으로(3:16) 3:6의 행동 패턴을 취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들도 하와와 동일한 행동 패턴을 했다. 그런데 가정한대로 하와가 범죄했던 마음의 동기와 하나님의 아들들이 범죄했던 마음의 동기가 같다면 이것이 창세기 6장을 해석하는 가장 좋은 헤석 방법이라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노아시대 사람들의 죄악상에 대한 해석은 이렇게 정리된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온 땅, 모든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해서 마치 하와처럼, 하와와 동일한 마음의 동기를 가지고 동일한 행동을 했다고 창세기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창세기 6장 노아시대의 모습은 창세기 3장 아담과 하와가 범죄할 때와 같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가 노아시대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다시 한번더 나타났다. 범죄의 동기가 같고, 행동 패턴도 비슷하다. 그 결과 죽음을 모르는 인간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 대홍수로 한 시대인들이 죽음을 당하는 심판이 나타나게 되었다 창세기 저자는 말하고 있다 해석할 수 있다.   

 

  이상의 결론이 타당성이 있다면 노아 시대 홍수 이전 사람들의 범죄는 전통적인 해석을 넘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했던 행동은 성적인 타락과 성적 강포를 넘어 세상을 다스리려는 악한 소원에 중점이 있다.

  이것은 전통적인 해석들이 해결하기 어려웠던 많은 문제들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해당 본문은 물론 3-6장까지 성경 본문을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볼 수 있다.

 

  먼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을 모두 범죄한 자라고 이해하도록 해준다.

  두번째로 이들의 결혼이 폭력과 동일한 것으로 표현된 것을 쉽게 설명해 준다.

  세번째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의 범죄를 세상 모든 사람의 죄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마지막으로 네피림에 대한 의문이 해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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